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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의 때'에 대한 수동적 기다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도전해야 할 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연구하고, 도전하는 그 과정 속에서 '때'를 열어주십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되, 문을 두드리고 길을 찾는 적극적인 행동이 함께 가야 합니다.

주제 14: '하나님의 때'에 대한 수동적 기다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도전해야 할 때

Topic 14: Passive Waiting for 'God's Timing': When to Actively Create Opportunities and Take on Challenges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11:4, 6)

서론: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영적인 안주
한 크리스천 청년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꿀 만한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며 도전을 격려합니다. 그러나 그는 몇 년째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기다리는' 동안, 시장의 트렌드는 변하고 경쟁사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하며, 그가 가졌던 기회의 창은 서서히 닫혀 갑니다.

이 모습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하나님의 때(Kairos)'라는 신성한 개념이 어떻게 '수동성과 현실 안주'를 위한 영적인 핑계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를 신뢰해야 한다는 신앙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영적 게으름'과 혼동하곤 합니다. 기도를 '행동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거룩한 포장지로 감싸 버립니다.

이 글은 이처럼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을 파헤치고, 성경이 말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기다림'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왜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지, 그리고 진정한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지를 탐구할 것입니다. 나아가, 언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고, 언제 믿음으로 문을 두드리며 기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구체적인 지혜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기다린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씨를 뿌리는 '믿음의 행동가'로 변화시키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에 빠지는가?
'하나님의 때'를 핑계로 행동하지 않는 태도는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는 종종 신앙의 깊이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기질 및 과거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첫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이 이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과거에 사업이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낍니다. 이 두려움은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낳고,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확실한 사인을 주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이들에게 '기다림'은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실패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둘째,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역시 행동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이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모든 위험 요소가 통제되며, 성공이 100% 보장될 때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 '완벽한 때'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시장을 분석하고 계획을 수정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실행'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불확실한 현실에 발을 내딛기 두려워하는 자신의 완벽주의를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편리한 핑계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왜곡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수동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과 노력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운명론' 혹은 '숙명론'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텐데, 내가 아등바등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은 모든 적극적인 행동의 동력을 앗아갑니다. 이들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어리석은 종처럼,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수동적 기다림'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완벽주의,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는 왜곡된 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깊은 '불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2. What (무엇이) '하나님의 때'에 대한 오해의 핵심인가? - '수동적 대기'와 '적극적 준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의 두 가지 측면, 즉 '수동적 대기'와 '적극적 준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은 이 둘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잘못된 기다림: 수동적 대기 (Passive Waiting)

이는 '하나님의 때'를 마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하나님의 때'라는 버스가 도착하면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해결사'로 여깁니다. 나의 역할은 최소화되고, 모든 책임과 행동은 하나님의 몫으로 전가됩니다.

시간의 사용: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비어 있는 시간'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구체적인 준비나 노력을 하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이라며 불신합니다.

기회의 인식: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인으로 해석합니다.

결과: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적, 현실적 무기력으로 이어집니다. 시간과 재능은 낭비되고, 기회는 눈앞에서 사라지며,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으로 전락합니다.

올바른 기다림: 적극적 준비 (Active Preparation)

이는 '하나님의 때'를 농부가 씨앗을 심고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비록 열매가 맺히는 시기는 하나님께 달려 있지만, 그전까지 농부는 밭을 갈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며 '준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나의 노력과 준비 위에 일하시는 '동역자'로 신뢰합니다. 나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함께 일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시간의 사용: 기다리는 시간은 '가장 바쁘게 준비하는 시간', '실력을 연마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동시에,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시킵니다. 시장을 조사하고, 기술을 배우고, 자본을 모으고, 사업 계획을 세우는 모든 행위가 바로 '기다림의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기회의 인식: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이 열렸을 때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문이 닫혀 있는 동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근육을 단련합니다.

결과: 이러한 태도는 기다림의 시간을 성장과 성숙의 시간으로 만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준비된 실력과 인격을 바탕으로 주어진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해의 핵심은 '기다림'을 '멈춤'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적인 기다림은 결코 멈춤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잔뜩 웅크리는 것과 같은, 가장 역동적이고 힘 있는 '준비'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기도하며 땀 흘려 준비할 때, 우리의 그 준비 위에 놀라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3. When (언제)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는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행동을 미루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첫째, '자원(Resource)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착각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자본금이 부족해", "이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내 실력이 아직 모자라", "함께할 좋은 팀원이 아직 없어" 와 같은 생각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무모한 도전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족함'은 행동하지 않기 위한 완벽한 핑계가 됩니다. 모든 것이 100% 완벽하게 갖춰질 때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완벽한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첫걸음을 내디뎠고,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의 걸음 위에 필요한 자원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둘째, '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서 멈춰 서서 기다리려고 합니다. 비즈니스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전체 경로를 선명하게 보여주실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바로 그다음 발걸음을 비춰주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멈춰 서 있는 배는 방향을 바꿀 수 없듯이, 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또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셋째, '주변의 반대나 부정적인 의견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자신의 비전을 의심하며 기다림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가족, 친구, 심지어 신앙 공동체의 리더마저도 "그건 너무 위험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열정은 쉽게 꺾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를 '하나님의 경고'로 해석하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을 '순종'이라고 착각합니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노아처럼 세상 모든 사람의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믿음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외로운 길을 걸어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원의 부족,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주변의 반대. 이 세 가지 장애물은 우리에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더 기다려라"고 속삭이는 가장 강력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지혜로운 신중함인지 아니면 믿음 없는 두려움인지를 정직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수동적 신앙'은 학습되고 강화되는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만 맡기는 듯한 수동적인 신앙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원천은 '기적 중심의 간증 문화' 입니다. 많은 부흥회나 간증 집회에서 우리는, 아무런 인간적인 노력 없이 오직 기도만 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기적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며, 이러한 간증들은 우리에게 큰 믿음의 도전을 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특별한' 사건들이 마치 하나님이 일하시는 '보편적인' 방식인 것처럼 오해될 때 발생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기적적인 개입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한 순종과 노력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기적 중심의 간증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땀 흘리는 과정의 신성함을 잊게 만들고, 우리 삶에서도 드라마틱한 반전과 기적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입니다. "기도해 봤는데, 아직 마음에 평안이 없어서 시작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주시는 내적인 평안과 확신은 중요한 분별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불안'이 성령의 사인이 아니라, 단순히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연스러운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어떤 신비한 음성이나 꿈, 혹은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확인하려는 경향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보편적인 원리(정직, 성실, 사랑 등)와 우리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지혜로운 상담가들의 조언과 같은 매우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그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세 번째 원천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교회 문화' 입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믿음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공동체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고집부려서 그래"라는 식으로 비판하고 정죄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공동체는, 성도들이 믿음의 도전을 하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적 중심의 간증, 신비주의적 경향, 그리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결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책임지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보다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에 머무르게 합니다.

5. Why (왜) '적극적인 도전'이 진정한 믿음의 표현인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으로 담대하게 뛰어드는 적극적인 도전이 왜 더 성경적이고 참된 믿음의 표현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공동 창조자(Co-creator)'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창 2:15)고 명하심으로써, 당신의 창조 세계를 함께 가꾸어갈 파트너로 초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하시고 인간은 구경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 있는 노동과 창의성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펼쳐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며, 조직을 세워가는 모든 행위는, 바로 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이러한 공동 창조자로서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단언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머릿속의 동의나 마음속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노아는 보이지 않는 일에 방주를 준비했으며, 모세는 장래의 상을 바라보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완벽한 조건과 확실한 보장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행동'했습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안락한 항구를 떠나 믿음의 항해를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능력이 되며, 풍랑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셋째, 하나님은 '움직이는 배'의 방향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멈춰 서 있는 배는 키를 아무리 돌려도 방향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 작은 키의 움직임으로도 배의 방향을 원하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길을 보여주시면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그 걸음을 통해, 때로는 순풍으로 때로는 역풍으로, 때로는 예기치 못한 만남을 통해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최선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적극적인 도전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적극적인 도전은 인간적인 교만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행함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 그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를 경험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How (어떻게) 행동할 때와 기다릴 때를 분별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행동하고 거룩하게 기다리기 위한 구체적인 분별의 원리와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기다림'을 '준비'로 재정의하라: 문이 열릴 때를 위한 훈련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이 열렸을 때 즉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르고 실력을 연마하는 '준비'의 시간입니다.

기도하며 연구하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와 함께, 내가 도전하려는 분야에 대한 철저한 시장 조사와 학습을 병행합니다.

기도하며 실력을 쌓으라: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웁니다.

기도하며 자원을 모으라: 필요한 자본을 아껴 저축하고, 함께할 동역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으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이처럼 '기도와 땀'이 함께하는 적극적인 준비의 자세가 바로 성경적인 기다림입니다.

방법론 2: '카이로스(Kairos)'를 분별하는 3가지 나침반

하나님이 정하신 결정적인 때, 즉 카이로스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객관적 진리): 내가 하려는 일이 성경의 보편적인 원리(정직, 사랑, 공의, 성실 등)에 부합하는가?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죄와 관련된 일은 아닌가? 이것이 모든 분별의 첫 번째 필터입니다.

2. 내적인 확신 (성령의 인도): 충분히 기도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평안과 그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는가? 두려움 때문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분명한 감동과 부담감이 있는가?

3. 외적인 환경 (열리는 문): 하나님께서 주변 환경과 상황을 통해 길을 열고 계시는가? 필요한 사람들이 만나지고, 자원이 공급되기 시작하며, 지혜로운 주변 신앙의 동료들이 나의 비전을 지지하고 격려하는가?

방법론 3: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으로 믿음을 실행하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확인하며 나아가는 '점진적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작고 빠른 실행: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예: 시제품 만들기, 잠재 고객 10명 인터뷰하기, 랜딩 페이지 개설하기 등)

피드백을 통한 학습: 그 작은 실행의 결과를 통해 시장의 반응과 하나님의 인도를 겸손하게 배웁니다. 처음의 계획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반복과 성장: '실행 → 측정 → 학습'의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며, 작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업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셨던 과정과 같습니다.

방향 제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안전망 위에서 춤추는 모험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전제일주의자'가 아니라, 모든 결과는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신뢰하기에, 그분의 무대 위에서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는 '믿음의 모험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도전하다가 넘어져도 괜찮다는 '궁극적인 안전망'입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자에게는, 오늘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주제 14: '하나님의 때'에 대한 수동적 기다림: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고 도전해야 할 때

Topic 14: Passive Waiting for 'God's Timing': When to Actively Create Opportunities and Take on Challenges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11:4, 6)

서론: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영적인 안주
한 크리스천 청년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꿀 만한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칭찬하며 도전을 격려합니다. 그러나 그는 몇 년째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기다리는' 동안, 시장의 트렌드는 변하고 경쟁사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출시하며, 그가 가졌던 기회의 창은 서서히 닫혀 갑니다.

이 모습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하나님의 때(Kairos)'라는 신성한 개념이 어떻게 '수동성과 현실 안주'를 위한 영적인 핑계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시간표를 신뢰해야 한다는 신앙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영적 게으름'과 혼동하곤 합니다. 기도를 '행동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거룩한 포장지로 감싸 버립니다.

이 글은 이처럼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을 파헤치고, 성경이 말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기다림'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왜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는지, 그리고 진정한 믿음이 어떻게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지를 탐구할 것입니다. 나아가, 언제 기도하며 기다려야 하고, 언제 믿음으로 문을 두드리며 기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구체적인 지혜와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기다린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씨를 뿌리는 '믿음의 행동가'로 변화시키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에 빠지는가?
'하나님의 때'를 핑계로 행동하지 않는 태도는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는 종종 신앙의 깊이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기질 및 과거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첫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이 이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과거에 사업이나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낍니다. 이 두려움은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낳고,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확실한 사인을 주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이들에게 '기다림'은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실패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둘째,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역시 행동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이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고, 모든 위험 요소가 통제되며, 성공이 100% 보장될 때만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 '완벽한 때'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시장을 분석하고 계획을 수정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실행'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불확실한 현실에 발을 내딛기 두려워하는 자신의 완벽주의를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편리한 핑계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왜곡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수동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과 노력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운명론' 혹은 '숙명론'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텐데, 내가 아등바등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생각은 모든 적극적인 행동의 동력을 앗아갑니다. 이들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어리석은 종처럼,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수동적 기다림'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완벽주의,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는 왜곡된 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깊은 '불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2. What (무엇이) '하나님의 때'에 대한 오해의 핵심인가? - '수동적 대기'와 '적극적 준비'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의 두 가지 측면, 즉 '수동적 대기'와 '적극적 준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은 이 둘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잘못된 기다림: 수동적 대기 (Passive Waiting)

이는 '하나님의 때'를 마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하나님의 때'라는 버스가 도착하면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해결사'로 여깁니다. 나의 역할은 최소화되고, 모든 책임과 행동은 하나님의 몫으로 전가됩니다.

시간의 사용: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비어 있는 시간'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구체적인 준비나 노력을 하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이라며 불신합니다.

기회의 인식: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인으로 해석합니다.

결과: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영적, 현실적 무기력으로 이어집니다. 시간과 재능은 낭비되고, 기회는 눈앞에서 사라지며,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으로 전락합니다.

올바른 기다림: 적극적 준비 (Active Preparation)

이는 '하나님의 때'를 농부가 씨앗을 심고 추수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비록 열매가 맺히는 시기는 하나님께 달려 있지만, 그전까지 농부는 밭을 갈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며 '준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나의 노력과 준비 위에 일하시는 '동역자'로 신뢰합니다. 나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이 함께 일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시간의 사용: 기다리는 시간은 '가장 바쁘게 준비하는 시간', '실력을 연마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동시에,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시킵니다. 시장을 조사하고, 기술을 배우고, 자본을 모으고, 사업 계획을 세우는 모든 행위가 바로 '기다림의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기회의 인식: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이 열렸을 때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문이 닫혀 있는 동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근육을 단련합니다.

결과: 이러한 태도는 기다림의 시간을 성장과 성숙의 시간으로 만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준비된 실력과 인격을 바탕으로 주어진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해의 핵심은 '기다림'을 '멈춤'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적인 기다림은 결코 멈춤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잔뜩 웅크리는 것과 같은, 가장 역동적이고 힘 있는 '준비'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기도하며 땀 흘려 준비할 때, 우리의 그 준비 위에 놀라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3. When (언제)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는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행동을 미루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첫째, '자원(Resource)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착각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아직 자본금이 부족해", "이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내 실력이 아직 모자라", "함께할 좋은 팀원이 아직 없어" 와 같은 생각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무모한 도전은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족함'은 행동하지 않기 위한 완벽한 핑계가 됩니다. 모든 것이 100% 완벽하게 갖춰질 때란 결코 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완벽한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첫걸음을 내디뎠고,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의 걸음 위에 필요한 자원들을 채워주셨습니다.

둘째, '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서 멈춰 서서 기다리려고 합니다. 비즈니스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전체 경로를 선명하게 보여주실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바로 그다음 발걸음을 비춰주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멈춰 서 있는 배는 방향을 바꿀 수 없듯이, 우리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또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셋째, '주변의 반대나 부정적인 의견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자신의 비전을 의심하며 기다림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가족, 친구, 심지어 신앙 공동체의 리더마저도 "그건 너무 위험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라고 말할 때, 우리의 열정은 쉽게 꺾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를 '하나님의 경고'로 해석하며,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을 '순종'이라고 착각합니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노아처럼 세상 모든 사람의 조롱 속에서도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믿음의 자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외로운 길을 걸어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원의 부족,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주변의 반대. 이 세 가지 장애물은 우리에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더 기다려라"고 속삭이는 가장 강력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지혜로운 신중함인지 아니면 믿음 없는 두려움인지를 정직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수동적 신앙'은 학습되고 강화되는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만 맡기는 듯한 수동적인 신앙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원천은 '기적 중심의 간증 문화' 입니다. 많은 부흥회나 간증 집회에서 우리는, 아무런 인간적인 노력 없이 오직 기도만 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기적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행하시며, 이러한 간증들은 우리에게 큰 믿음의 도전을 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특별한' 사건들이 마치 하나님이 일하시는 '보편적인' 방식인 것처럼 오해될 때 발생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기적적인 개입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한 순종과 노력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기적 중심의 간증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땀 흘리는 과정의 신성함을 잊게 만들고, 우리 삶에서도 드라마틱한 반전과 기적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신비주의적 경향입니다. "기도해 봤는데, 아직 마음에 평안이 없어서 시작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물론 성령님이 주시는 내적인 평안과 확신은 중요한 분별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불안'이 성령의 사인이 아니라, 단순히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연스러운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어떤 신비한 음성이나 꿈, 혹은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만 확인하려는 경향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의 보편적인 원리(정직, 성실, 사랑 등)와 우리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지혜로운 상담가들의 조언과 같은 매우 '자연적인' 방법을 통해 그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세 번째 원천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교회 문화' 입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믿음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공동체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보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고집부려서 그래"라는 식으로 비판하고 정죄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수동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공동체는, 성도들이 믿음의 도전을 하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기적 중심의 간증, 신비주의적 경향, 그리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결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책임지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보다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에 머무르게 합니다.

5. Why (왜) '적극적인 도전'이 진정한 믿음의 표현인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으로 담대하게 뛰어드는 적극적인 도전이 왜 더 성경적이고 참된 믿음의 표현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공동 창조자(Co-creator)'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창 2:15)고 명하심으로써, 당신의 창조 세계를 함께 가꾸어갈 파트너로 초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하시고 인간은 구경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 있는 노동과 창의성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펼쳐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만들며, 조직을 세워가는 모든 행위는, 바로 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이러한 공동 창조자로서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단언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머릿속의 동의나 마음속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모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노아는 보이지 않는 일에 방주를 준비했으며, 모세는 장래의 상을 바라보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완벽한 조건과 확실한 보장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붙들고 '행동'했습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안락한 항구를 떠나 믿음의 항해를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능력이 되며, 풍랑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셋째, 하나님은 '움직이는 배'의 방향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멈춰 서 있는 배는 키를 아무리 돌려도 방향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때, 작은 키의 움직임으로도 배의 방향을 원하는 곳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길을 보여주시면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그 걸음을 통해, 때로는 순풍으로 때로는 역풍으로, 때로는 예기치 못한 만남을 통해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최선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적극적인 도전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적극적인 도전은 인간적인 교만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행함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 그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를 경험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How (어떻게) 행동할 때와 기다릴 때를 분별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수동적 기다림의 함정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행동하고 거룩하게 기다리기 위한 구체적인 분별의 원리와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기다림'을 '준비'로 재정의하라: 문이 열릴 때를 위한 훈련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이 열렸을 때 즉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르고 실력을 연마하는 '준비'의 시간입니다.

기도하며 연구하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와 함께, 내가 도전하려는 분야에 대한 철저한 시장 조사와 학습을 병행합니다.

기도하며 실력을 쌓으라: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웁니다.

기도하며 자원을 모으라: 필요한 자본을 아껴 저축하고, 함께할 동역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으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이처럼 '기도와 땀'이 함께하는 적극적인 준비의 자세가 바로 성경적인 기다림입니다.

방법론 2: '카이로스(Kairos)'를 분별하는 3가지 나침반

하나님이 정하신 결정적인 때, 즉 카이로스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객관적 진리): 내가 하려는 일이 성경의 보편적인 원리(정직, 사랑, 공의, 성실 등)에 부합하는가? 성경이 명백히 금하는 죄와 관련된 일은 아닌가? 이것이 모든 분별의 첫 번째 필터입니다.

2. 내적인 확신 (성령의 인도): 충분히 기도하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평안과 그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는가? 두려움 때문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분명한 감동과 부담감이 있는가?

3. 외적인 환경 (열리는 문): 하나님께서 주변 환경과 상황을 통해 길을 열고 계시는가? 필요한 사람들이 만나지고, 자원이 공급되기 시작하며, 지혜로운 주변 신앙의 동료들이 나의 비전을 지지하고 격려하는가?

방법론 3: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으로 믿음을 실행하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확인하며 나아가는 '점진적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작고 빠른 실행: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구체적인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예: 시제품 만들기, 잠재 고객 10명 인터뷰하기, 랜딩 페이지 개설하기 등)

피드백을 통한 학습: 그 작은 실행의 결과를 통해 시장의 반응과 하나님의 인도를 겸손하게 배웁니다. 처음의 계획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방향을 수정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반복과 성장: '실행 → 측정 → 학습'의 사이클을 계속 반복하며, 작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점진적으로 사업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하나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셨던 과정과 같습니다.

방향 제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안전망 위에서 춤추는 모험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전제일주의자'가 아니라, 모든 결과는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신뢰하기에, 그분의 무대 위에서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는 '믿음의 모험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도전하다가 넘어져도 괜찮다는 '궁극적인 안전망'입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담대하게 도전하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자에게는, 오늘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는 '하나님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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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элхийн Интернэт Номлолын Нийгэмлэг (SWIM) нь 1996 онд байгуулагдсан номлогчийн байгууллага бөгөөд 20 гаруй жилийн турш интернет болон мэдээллийн технологийн тусламжтайгаар дэлхийн номлолд хувь нэмрээ оруулсаар ирсэ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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