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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누엔 (Henri Nouwen), 『탕자의 귀환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앙리 누엔 (Henri Nouwen)의 『탕자의 귀환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부제: 렘브란트의 그림 한 점, 영혼의 귀향을 말하다 -

서론: 렘브란트의 그림 한 점, 영혼의 귀향을 말하다
🖼️ 그림 한 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던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앙리 누엔은, 어느 날 친구의 사무실에 걸린 렘브란트의 명화 <탕자의 귀환> 포스터와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에 깊이 사로잡힙니다. 이 만남은 그를 수년간의 깊은 영적 성찰로 이끌었고, 마침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날아가 원작 앞에 며칠간 머물게 했습니다.

그의 가장 사랑받는 대표작 **『탕자의 귀환』**은 바로 이 그림과의 깊은 만남 속에서 탄생한 책입니다. 이 책은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에 대한 단순한 성경 주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렘브란트의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탕자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작은아들, 큰아들, 그리고 아버지—모두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함을 발견해나가는 한 편의 감동적인 영적 자서전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앙리 누엔의 시선을 따라, 이 위대한 그림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집을 떠난 '작은아들'의 모습 속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어서, 집에 머물렀지만 마음은 더 멀리 떠나 있었던 '큰아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숨겨진 분노와 시기심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말없이 끌어안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돌아갈 집이자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할 궁극적인 소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그림 속 세 인물, 우리 영혼의 세 얼굴
누엔의 천재성은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 속 한 인물이 아니라, 세 인물 모두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데 있습니다.

1. 작은아들: 사랑받지 못함의 슬픔
떠남의 동기: 우리는 흔히 작은아들의 죄를 방탕과 허랑방탕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엔은 그가 집을 떠난 근본적인 동기가, 아버지 집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있었다고 통찰합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소서"라는 요구는,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누엔의 고백: 누엔은 이 작은아들의 모습 속에서, 평생 동안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하버드 교수라는 화려한 성공 속에서도, 그는 늘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면의 공허함 때문에 '먼 나라'를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향의 의미: 작은아들의 귀향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영웅적인 결단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임을 기억해내고 그 품으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귀향은 우리의 깨어짐과 수치 속에서도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큰아들: 집 안에 있는 탕자
누엔에게, 이 이야기의 더 깊은 비극은 집 밖에 있던 작은아들이 아니라, 집 안에 있으면서도 길을 잃었던 큰아들에게 있습니다.

더 위험한 탕자: 큰아들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버지로부터 수만 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동생을 향한 시기심,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기쁨 없는 의무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이 아니라, 품삯을 계산하는 노예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엔의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 누엔은 이 큰아들의 모습이야말로 '성공한 종교인'인 자기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자화상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고 봉사했지만, 그 동기는 종종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받는 다른 '죄인들'을 보며 은밀한 시기심과 판단의 죄를 짓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3. 아버지: 우리의 궁극적인 소명
그림의 중심에는 말없이 두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엔은 렘브란트가 묘사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모습: 그림 속 아버지는 오랜 기다림과 눈물로 거의 눈이 먼 모습입니다. 그는 아들을 찾아 달려 나가는 대신, 언제나 돌아올 아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채로 서 있습니다. 아들의 어깨를 감싼 그의 두 손은, 한 손은 강인한 남성의 손으로, 다른 한 손은 부드러운 여성의 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견고함과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위로, 즉 온전한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궁극의 부르심, 아버지가 되는 것: 책의 마지막에서, 누엔은 자신의 영적 여정의 최종 목적지가 더 이상 '아들'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아들이나, 분노를 풀고 집으로 돌아와야 할 큰아들의 자리를 넘어, 이제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위대한 반전이자 최종적인 부르심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판단을 멈추고 축복하는 자가 되는 것, 다른 사람의 죄를 슬퍼하고 용서하며, 세상의 모든 탕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대의 집이 되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집으로 돌아와, 집이 되어주기
앙리 누엔의 『탕자의 귀환』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집을 나간 작은아들과, 집 안에 갇힌 큰아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두 길 잃은 아들 모두가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포용 안에서 치유받아야 할 존재임을 일깨워줍니다.

이러한 신학적 깨달음은 앙리 누엔 자신의 삶의 극적인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명성과 성공이라는 '큰아들의 세계'였던 하버드 대학을 떠나, 지적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라르쉬 공동체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더 이상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섬기고 받아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실천하며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그의 삶이 그의 신학을 증명한 것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 한 점에 대한 앙리 누엔의 깊은 묵상은, 우리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이야기의 어디에 서 있는가? 집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가? 집에 있으면서도 길을 잃었는가? 혹은, 이제 당신의 팔을 벌려 다른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집이 되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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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элхийн Интернэт Номлолын Нийгэмлэг (SWIM) нь 1996 онд байгуулагдсан номлогчийн байгууллага бөгөөд 20 гаруй жилийн турш интернет болон мэдээллийн технологийн тусламжтайгаар дэлхийн номлолд хувь нэмрээ оруулсаар ирсэ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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