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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무스 (Anselm of Canterbury), 『쿠르 데우스 호모 (Cur Deus Homo)』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Anselm of Canterbury)의 『쿠르 데우스 호모 (Cur Deus Homo)』
- 부제: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 - 이성을 향한 믿음의 대답 -
서론: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 - 이성을 향한 믿음의 대답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굳이 연약한 인간이 되셔야만 했는가? 왜 그토록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인류를 구원하셔야 했는가? 그분이라면 그저 말씀 한마디로, 혹은 천사를 보내는 것과 같은 더 쉽고 위엄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용서하실 수도 있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인 '성육신'에 대해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을 법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11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안셀무스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그의 저서 『쿠르 데우스 호모(Cur Deus Homo)』, 즉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그의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대답입니다.
『프로슬로기온』을 통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안셀무스는 이 책에서도 동일한 신학적 여정을 계속합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잠시 제외하고(remoto Christo)" 오직 이성적인 필연성만으로 왜 구원을 위해 '신인(God-Man)'이 반드시 필요했는지를 증명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불신자를 설득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이 믿는 바의 내적인 합리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돕는 지적인 순례기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안셀무스의 제자인 보소(Boso)가 제기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따라가며, 안셀무스가 어떻게 **'만족설(Satisfaction Theory)'**이라는 획기적인 속죄 이론을 통해 이 문제에 답하는지 탐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본질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빚'으로 정의하는 그의 독창적인 통찰을 살펴보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신적 딜레마를 분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신인(God-Man)'만이 이 딜레마의 유일한 해법임을 논증하는 그의 주장의 정점에 이르며, 이 이론이 서방 기독교에 미친 지대한 영향과 그 한계까지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본론: 신의 영광과 인간의 빚, 그 필연의 드라마
이 책은 스승 안셀무스와 제자 보소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보소는 신앙의 이름으로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는 역할을 하며, 안셀무스는 이에 대해 차근차근 이성적인 답변을 제시합니다.
1. 문제 제기: "다른 길은 없었는가?"
보소는 "불신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핵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왜 하필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받아 죽는, 그토록 비합리적이고 품위 없어 보이는 방법을 택하셨냐는 것입니다. 이는 신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모욕처럼 보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안셀무스는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이고 정의로우며 필연적인 길이었음을 보이겠다고 선언합니다.
2. 죄의 본질: 하나님의 영광을 훔친 빚
안셀무스 논증의 출발점은 '죄'에 대한 혁신적인 재정의에 있습니다. 그는 죄를 단순히 법을 어긴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죄란,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영광(honor)'을 돌려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인 순종을 바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죄는 이러한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침해하며, 그분의 영광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이 죄의 빚은 얼마나 큰가? 안셀무스는 그 빚이 **'무한하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죄를 지은 인간의 유한함이 아니라, 죄로 인해 모욕을 받으신 하나님의 무한한 존귀와 위엄에 의해 그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왕을 거역한 죄의 무게는 무한한 것입니다.
3. 신적 딜레마: 갚아야만 하지만 갚을 수 없는 빚
이 '무한한 빚'은 하나의 심각한 딜레마를 만들어냅니다.
정의는 반드시 '만족'을 요구한다: 안셀무스에게 하나님은 질서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죄라는 무질서는 반드시 바로잡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가(보상 혹은 만족, satisfaction) 없이 죄를 그냥 용서해 주신다면, 이는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가 됩니다. 죄를 지은 자와 짓지 않은 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불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며, 죄의 빚은 반드시 갚아져야 합니다.
인간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이 빚을 갚아야 할 당사자는 죄를 지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무한한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평생토록 순종하고 선을 행한다 해도, 그것은 원래부터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의무일 뿐, 과거에 진 빚을 갚는 '추가적인'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여분의 자산이 전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오직 인간만이 갚아야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갚으실 수 있다(Solus homo debet, solus Deus potest)"**는 절망적인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4. 유일한 해결책: 신인(神人)의 보상
이 완벽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안셀무스는 이 딜레마의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유일한 존재, 즉 **'신인(Deus Homo, God-Man)'**이 필요하다고 논증합니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빚을 갚아야 할 당사자인 인류를 대표하여, 인류의 의무를 대신 짊어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무한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그 보상의 가치가 '무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빚을 갚으셨는가?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죄의 대가인 죽음을 겪을 의무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인류를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이 자발적인 죽음은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넘어서는 **'과분한 행위(supererogation)'**였습니다.
동시에 그분은 하나님이셨기에, 그분이 바친 생명의 가치는 무한했습니다.
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희생은, 인류가 하나님께 진 무한한 빚을 모두 갚고도 남는 **'만족(satisfaction)'**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은 아무런 보상도 필요 없으셨기에, 이 희생을 통해 얻어진 무한한 공로가 죄지은 인류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육신과 십자가는 하나님의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당신의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가장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드라마였다는 것이 안셀무스 논증의 결론입니다.
결론: 십자가의 '합리성'과 그 빛과 그림자
안셀무스의 『쿠르 데우스 호모』는 서방 기독교 신학에 거대한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배상금 이론(Ransom Theory,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탄에게 지불되었다는 이론)'을 넘어서, 십자가의 의미를 하나님의 내적인 속성인 '정의'와 '영광'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만족설'**을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론은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와 종교개혁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가톨릭과 개신교 속죄론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안셀무스는 이 책을 통해 십자가 사건이 맹목적으로 믿어야 할 신화가 아니라, 그 안에 심오한 신적 합리성과 필연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진리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의 이론은 후대에 여러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봉건사회의 '영주-기사' 관계를 연상시키는 너무 법적이고 상업적인 모델이라는 비판, 사랑의 하나님을 마치 자신의 명예 훼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냉정한 군주처럼 묘사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의 의미를 축소하고 오직 '죽음'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동방 정교회는 속죄를 법적 개념보다는 '신성 참여(Theosis)'라는 치유와 변화의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르 데우스 호μο』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안셀무스는 십자가라는 가장 큰 역설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 신비의 심장부로 들어가 경이로운 신적 논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앙의 가장 깊은 질문들을 피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