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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of Alexandria), 『성육신 (On the Incarnation)』

아타나시우스의 『성육신 (On the Incarnation)』
- 부제: 하나님의 딜레마와 세상을 구원한 거룩한 논리 -
서론: 신학의 심장,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인류의 모든 이성과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의 거대한 신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유한하고, 연약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Incarnation)' 사건입니다. 이 진술은 너무나 거대하고 충격적이어서 우리는 종종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교리로 암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은 이 신비 앞에서 멈추어 서서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굳이 이런 방법을 택하셔야만 했는가?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성육신은 왜 필연적이었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역사상 가장 명쾌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감동적인 답변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입니다. '정통 신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의 이단 사상에 맞서 평생을 싸우며 니케아 신앙을 수호한 인물입니다. 그의 저서 『성육신』은 바로 이 정통 신앙의 심장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복잡한 신학 논쟁을 위한 글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이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방법 외에는 불가능했는지를 열정적이고 목회적인 언어로 풀어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장엄한 송가(頌歌)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아타나시우스의 이 불후의 명작을 통해 성육신의 거룩한 논리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먼저, 인류가 처했던 비참한 상황, 즉 죄로 인한 '죽음과 부패'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직면하신 '신적 딜레마(Divine Dilemma)'와, 성육신이 어떻게 이 딜레마의 유일하고도 완벽한 해법이 되는지를 아타나시우스의 논증을 따라 분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승리가 어떻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증명되었는지를 고찰하며, 이 책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깊은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성육신이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빚어낸 가장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사건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본론: 신적 딜레마와 그 유일한 해법
아타나시우스의 논증은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처럼 전개됩니다. 그는 먼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딜레마를 제시한 뒤, 마침내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극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1. 문제의 기원: 인간의 딜레마
아타나시우스의 이야기는 창조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자신의 선하심을 나누기 위해 무(無)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Logos)'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습니다. 이 '형상'은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며 한 가지 법을 세우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린다면, 그들은 다시 원래의 상태, 즉 **'죽음과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인간은 이 자유의지로 범죄했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에게로 향했습니다.
이 타락의 결과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 죽음(Death): 하나님의 법은 신실하시기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인간은 이제 죽음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되었고, 존재에서 비존재로 해체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부패와 무지(Corruption & Ignorance): 더 심각한 것은 인간 본성 자체가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새겨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잃어버리고, 이성적 존재에서 비이성적이고 동물적인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2. 하나님의 딜레마와 성육신의 필연성
바로 이 지점에서, 아타나시우스는 그의 논증의 핵심인 **'신적 딜레마'**를 제시합니다. 타락한 인간을 보시며 하나님은 이중의 딜레마에 빠지셨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진실성(Truthfulness)**은 당신께서 세우신 '죽음의 법'이 집행되기를 요구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법을 그냥 철회하신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며, 당신의 권위는 무너지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피조물이 허무하게 멸망하여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멸망을 그냥 방치하신다면, 그것은 창조주로서 무능하거나 변덕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어, 하나님의 선하심에 어긋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의 진실성과 선하심이 마치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서, 인간의 '회개'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아타나시우스는 강조합니다. 회개는 미래의 죄를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이미 인간 본성 깊이 자리 잡은 '부패'를 제거하거나, 이미 선고된 '죽음'의 빚을 갚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한 분, 처음부터 인간을 창조하셨던 바로 그분, 하나님의 '말씀'(Logos), 즉 성자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것, 즉 성육신만이 이 딜레마의 유일하고도 완벽한 해법이었습니다.
죽음의 빚을 갚기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신 '말씀'은 죽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죽음의 빚을 남김없이 갚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당신의 몸에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 그 자체이십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여기서 유명한 **'초상화 비유'**를 사용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마치 형체가 더러워지고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된 왕의 초상화와 같습니다. 이 초상화를 복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림의 모델이었던 왕이 다시 와서 화가 앞에 앉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가는 살아있는 모델을 보고 지워진 형상을 다시 덧그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신 '말씀'께서 친히 인간의 몸(같은 재료)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써, 우리의 훼손된 본성 위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새겨주시고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육신은 즉흥적이거나 임의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성과 선하심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인간의 죽음과 부패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가장 지혜롭고 합당한(fitting)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3. 승리의 증거: 십자가와 부활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말로 이기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타나시우스는 신학적 논증을 넘어, 당시 교회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던 생생한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첫째, 제자들과 순교자들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에는 모든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심지어 연약한 여성과 아이들까지도 죽음을 비웃으며 순교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만약 죽음이 여전히 최종적인 승리자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의 권세가 그리스도 안에서 파괴되었기에, 신자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둘째, 세상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 이후로 이교 신들의 신탁은 잠잠해졌고, 마술과 우상숭배는 힘을 잃었으며, 세상의 폭력성은 복음 앞에서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을 무장해제시킨 우주적인 승리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타나시우스에게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에 대한 공개적인 승리를 선포하는 개선문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승리가 영원한 사실임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인(印)이었습니다.
결론: 재창조된 인류, 신이 된 인간
아타나시우스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장엄하고 논리 정연한지를 보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하나님의 진실성 대 선하심'이라는 딜레마는, 창조주이신 '말씀'께서 친히 피조물이 되시어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시는 성육신을 통해 완벽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논리를 아타나시우스는 하나의 강렬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이는 동방교회 신학의 정수이자, 성육신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는 선언입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αὐτὸς γὰρ ἐνηνθρώπησεν, ἵνα ἡμεῖς θεοποιηθῶμεν)
여기서 '하나님 되게 한다(신화, 神化, Theosis)'는 것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부패할 운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신적인 생명과 성품에 참여하며, 영원한 교제를 누리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C. S. 루이스가 "하나의 걸작"이라고 극찬했던 『성육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도덕 교사나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분은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인 죽음과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우주적인 구원자이시며, 그분의 성육신, 죽음, 부활은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자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성육신이라는 신비 앞에서 단지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넘어, 우리를 재창조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