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선교와 종말론: 마지막 시대와 선교의 긴급성

심층 분석: 선교와 종말론
- 마지막 시대와 선교의 긴급성 -
I. 서론: 나침반인가, 수정 구슬인가?
'종말론(Eschatology)'이라는 단어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말론은 재앙적인 사건들, 적그리스도의 출현, 휴거의 시점 등을 예측하고 계산하려는 신비주의적 호기심의 대상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미래를 점치는 '수정 구슬'처럼, 종말론은 세상 끝 날의 시간표를 해독하려는 시도로 변질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종말론의 본질적인 목적은 미래에 대한 **예측(Prediction)**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교회의 삶과 사명을 위한 **준비(Preparation)**에 있습니다. 성경의 종말론은 교회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지,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나침반의 바늘이 언제나 흔들림 없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선교(Mission)'**입니다.
따라서 선교와 종말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우리가 '선교'를 얼마나 긴급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결정합니다. 이 둘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할 때, 선교는 비로소 막연한 열심을 넘어,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클라이맥스에 동참하는 절박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이 됩니다. 본고에서는 마지막 시대의 성경적 의미를 재정립하고, 종말론이 어떻게 선교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불건전한 종말론은 무엇인지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합니다.
II. '마지막 시대'의 재정립: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
'마지막 시대(The Last Days)'는 언제 시작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미래의 어느 특정 시점으로 생각하지만,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의 오심으로 '마지막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17,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며)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 1:2)
신학적으로 이를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긴장 관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Already): 예수님의 초림,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다. 사탄의 권세는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아직 (Not Yet):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직 아닙니다. 여전히 죄와 고통이 존재하며, 사탄은 패배한 군대의 잔당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때 비로소 완전히 그 영광을 드러내며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시대'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주어진 전체 기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끝을 막연히 기다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역사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 즉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선교적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주인공들입니다.
III. 마태복음 24:14 - 선교와 종말의 직접적 연결 고리
그렇다면 이 마지막 시대는 언제 끝나는가?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다른 어떤 징조보다 더 명확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이 구절은 선교와 종말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성경 구절이며, 선교의 긴급성을 부여하는 신적인 명령입니다.
1. 목표: "모든 민족에게 (panta ta ethnē)"
'모든 민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 타 에트네'는 현대의 정치적 국가(nation)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언어, 문화, 종족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모든 **'종족 집단(people group)'**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시점은 복음이 지리적으로 모든 나라에 도달하는 것을 넘어, 문화적으로 모든 종족 집단에게 의미 있게 증언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s)'이 수천 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과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2. 방법: "증언되기 위하여 (for a witness)"
선교는 단순히 복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삶과 말로 보여주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에는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삼는 모든 과정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강제적인 개종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스스로 복음을 듣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결과: "그제야 끝이 오리라 (then the end will come)"
이 구절은 우리가 선교를 열심히 하면 재림의 날짜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림의 시기는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마 24:36). 오히려 이것은 세계 선교의 완성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예언적 선포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종말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언함으로써 역사의 완성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IV. 종말론이 선교에 불어넣는 4가지 동력
올바른 종말론적 신앙은 선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동력을 제공합니다.
1. 거룩한 긴급성 (Sober Urgency)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4). '마지막 시대'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유한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은 안절부절못하는 공포나 조급함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거룩한 긴급성'**을 부여합니다.
2. 승리에 대한 확신 (Confident Victory) 👑
종말론은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선교의 최종 결과를 미리 보여줍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이 환상은 우리의 선교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르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왕의 승리를 선포하고 그 승리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줍니다.
3. 긍휼에 기초한 사랑 (Compassionate Love) ❤️🩹
최후의 심판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향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말론은 지옥의 심판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사람들을 협박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바라보게 하여, 그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4. 영적 전쟁에 대한 인식 (Spiritual Warfare Awareness) 🛡️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탄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계 12:12). 종말론적 시각은 선교가 단순히 인간적인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한 지역을 묶고 있는 어둠의 권세에 맞서 싸우는 치열한 영적 전쟁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적인 전략을 넘어, 기도와 말씀이라는 영적 무기로 무장하게 만듭니다.
V. 경계해야 할 불건전한 종말론적 선교
종말론이 선교의 강력한 동력이 되는 만큼, 왜곡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과 공포 마케팅: 특정 날짜를 재림의 날로 못 박고, 공포심을 조장하여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가장 악의적인 형태입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음모론적 분리주의: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을 종말의 징조와 억지로 연결 짓는 음모론에 빠져, 세상을 '악의 소굴'로만 규정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명을 포기한 채 자신들만의 '영적 게토'로 숨어버리는 태도입니다.
'숫자 채우기' 식 선교: 마태복음 24:14을 오해하여, 제자 삼는 깊이 있는 과정 없이 오직 '모든 종족에게 복음 한 번 들려주기'라는 식으로 선교를 양적이고 기계적인 과업으로 축소시키는 위험입니다.
건강한 종말론적 선교는 '소망에 찬 긴급성(Hopeful Urgency)'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절망이나 공포가 아니라, 반드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에 기초하며, 그 소망 때문에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거룩한 열심으로 나타납니다.
VI. 결론: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사람들
선교와 종말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종말론 없는 선교는 그 긴급성과 궁극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선교 없는 종말론은 성경의 명령을 외면한 공허한 지적 유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주자들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귀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께서 오실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닦는 작업이 바로, 아직 왕의 소식을 듣지 못한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 "왕께서 오십니다! 잔치에 참여하십시오!"라고 외치는 선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종말론적 신앙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벅찬 기대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함께 참여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 잔치의 완성을 고대하며, 그 잔치에 한 사람이라도 더 초대하기 위해 기쁨으로 달려 나가는 왕의 전령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