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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계와 문화명령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 사명
서론: 존재의 청사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소명
성경의 첫 장을 펼칠 때, 우리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가?"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은 이 심오한 질문에 대해 장엄하고도 혁명적인 선언으로 답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라는 이 개념은 기독교 인간 이해의 초석이자,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궁극적인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단순히 인간이 소유한 이성, 도덕성, 창의력과 같은 속성들의 목록을 의미하는 정적인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동적이며, 하나의 목적, 즉 **소명(vocation)**이자 **사명(mission)**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 이 사명은 인류의 타락 이후에 시작된 '영혼 구출'이라는 긴급 구조 활동과는 구별되는, 창조 질서 자체에 깊이 뿌리내린 근원적인 임무이다. 타락이 이 사명을 왜곡하고 부패시켰을지언정,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따라서 본고의 목적은 창조의 서막에서부터 인류에게 부여된 이 본질적 사명의 다채로운 면모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그 사명은 죄로 인해 어떻게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사명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교회를 통해 수행되며, 새 창조 안에서 완성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의 일상적인 노동과 관계, 창조 활동이 실은 우주적이고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에 참여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 사명은 다름 아닌, 태초에 의도된 대로 온전한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반사하는 거울로 살아가는 것이다.
본론 1부: 창조의 원형, 본래적 사명의 세 가지 차원 (창세기 1-2장)
창세기 1장과 2장은 죄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된 완전한 세상 속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 사명은 크게 세 가지 상호 연결된 차원—왕적, 관계적, 문화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왕적 사명: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청지기
창세기 1장 26절과 28절은 인간의 창조 목적을 명확히 제시한다.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사용된 '다스리다'(radah)와 '정복하다'(kabash)라는 단어는 강력한 왕적 권위를 암시한다. 그러나 이 권위는 폭력적인 착취나 이기적인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 속에서 왕은 종종 신의 대리 통치자로 여겨졌으며, 먼 지방에 자신의 형상(조각상)을 세워 자신의 권위와 통치를 상징하게 했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온 땅에 자신의 살아있는 형상, 즉 인류를 두심으로써, 당신의 선하고 지혜로운 통치를 대리하도록 위임하셨다.
인간의 왕적 사명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나님께서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창조하셨듯이, 인류는 그 질서를 유지하고 확장하며, 하나님의 샬롬(평화와 번영)이 온 피조 세계에 가득하도록 다스리는 청지기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지혜, 그리고 사랑의 통치가 인간 사회와 자연 세계의 모든 구조 속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거룩한 책임이다. 인간은 피조물의 왕으로 군림하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래에서 그분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대리 통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이 왕적 사명은 인간의 모든 리더십, 조직 관리, 사회 정의 실현 활동의 원형이 된다.
2. 관계적 사명: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공동체
창조 기사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표현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는 복수형의 사용이다. 이는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하나님 자신의 내적 충만함과 관계성을 암시하며, 훗날 삼위일체 교리로 명확해질 신비의 서곡이다. 하나님은 단독자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의 영원한 사랑의 교제 안에 계시는 관계적 존재이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역시 이 관계성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인간은 고독한 개인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공동체적 존재, 즉 '남자와 여자'로 지음 받았다.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좋지 아니하다"고 여기신 하나님은 그를 위한 '돕는 배필'을 만드심으로써 최초의 인간 공동체인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적 사명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사랑과 연합을 세상에 드러내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단순히 인구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온 땅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건강한 공동체로 채우라는 사명이다. 결혼과 가정, 우정과 사회적 연대는 모두 이 관계적 사명을 수행하는 중요한 장(場)이다. 인간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연합하며,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가시적으로 세상에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았다.
3. 문화적 사명: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가꾸는 예배자
창세기 2장 15절은 인간의 사명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서 '경작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abad)는 '일하다', '섬기다', 그리고 '예배하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지키다'로 번역된 '샤마르'(shamar) 역시 '보존하다', '보호하다', 그리고 율법을 '준수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 단어들은 주로 제사장적, 예배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이는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노동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 행위였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명령'의 핵심이다. 인간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 내고 발전시켜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에덴 동산은 인류가 시작할 원형적 성소(sanctuary-prototype)였으며, 인류는 이 동산을 온 땅으로 확장하여 세상 전체를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거대한 '성전-정원'으로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받았다. 과학, 예술, 기술, 학문, 정치, 경제 등 인간 문화의 모든 영역은 이 사명을 수행하는 도구이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의성을 본받아, 피조 세계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문화를 가꾸어가는 '동역자'로 부름받은 것이다.
본론 2부: 뒤틀린 사명, 타락의 비극적 결과 (창세기 3장)
인류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이 존귀한 사명에 대한 정면적인 반역이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원했던 인류의 교만은 본래의 사명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그 방향을 치명적으로 뒤틀어 버렸다.
왕적 사명의 왜곡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청지기직을 포기하고 스스로가 왕이 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 '아래에서' 다스리는 대신,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인간은 결국 피조 세계와 다른 인간을 향한 폭군으로 전락했다. 선한 통치는 이기적인 지배로, 책임감 있는 개발은 탐욕스러운 착취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자연은 신음하게 되었고(롬 8:22), 인간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억압과 불의의 현장이 되었다. 하나님의 질서를 확장해야 할 사명은 오히려 혼돈과 파괴를 확산시키는 비극으로 역전되었다.
관계적 사명의 파괴는 죄의 즉각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두려움과 숨음으로 대체되었고(수직적 단절), 아담과 하와 사이의 연합은 서로를 탓하는 비난과 갈등으로 깨어졌다(수평적 단절). 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최초의 살인으로, 라멕이 복수를 자랑하는 폭력의 문화로, 그리고 바벨탑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연합했으나 결국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으로 귀결되는 인류 공동체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진다. 사랑의 공동체로 세상을 채우라는 사명은 불신과 증오, 분열로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저주가 되었다.
문화적 사명의 변질 역시 심각했다. 예배 행위였던 노동은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수고'와 '땀'이 되었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저항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창의성을 반영해야 할 인간의 능력은 이제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을 높이는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예술은 퇴폐적으로, 기술은 파괴적으로, 학문은 교만하게 변질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었다. 온 세상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꾸어야 할 사명은,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해 하늘에 닿으려는 바벨탑을 쌓는 헛된 야망으로 전락했다.
본론 3부: 회복된 사명,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할
그러나 인류의 실패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찾아오시며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이 구속의 역사는 '마지막 아담'이시며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1. 참된 형상, 그리스도를 통한 사명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류가 실패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본질적 사명을 완벽하게 성취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은 참된 왕으로서 섬김을 통해 다스리셨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심으로 하나님의 샬롬의 통치를 회복하셨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죄와 죽음, 그리고 혼돈의 세력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였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셨다.
그분은 완전한 관계를 보여주셨다.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하고 순종하셨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심으로 수평적 관계의 최고 모범을 보이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었고(수직적 화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던 장벽을 무너뜨려 그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셨다(수평적 화해).
그분은 궁극적인 문화 창조자이셨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시며, 폭풍을 잠잠케 하신 그분의 사역은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시는 '새 창조'의 시작이었다. 그분의 전 생애는 하나님께 드려진 온전한 예배(abad)이자,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지켜낸(shamar) 거룩한 사역이었다.
2. 새로운 백성, 교회를 통한 사명의 참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신자들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골 3:10)가 된다. 교회는 바로 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주신 지상 대위임령(마 28:18-20)은 완전히 새로운 사명이 아니라, 타락 이후의 세상 속에서 구속사적 맥락에 맞게 재해석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부여된 창조 사명의 회복이자 확장이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 명령의 구속사적 성취이다. 이제 교회는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온 땅을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 즉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들로 채워야 할 사명을 받았다. 이 사명은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수행되지 않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의 사명은 총체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선포하며 세상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또한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는 관계적 공동체가 되어, 분열된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화해를 보여주는 대안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 각자는 자신의 삶의 자리—가정, 직장, 학교, 예술계, 정계—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일하고 문화를 가꾸어감으로써 문화적 사명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일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타락한 문화를 변혁시키는 선교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결론: 새 창조를 향한 여정, 완성될 사명
우리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타락으로 왜곡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교회를 통해 수행되는 인간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살펴보았다. 이 여정의 종착역은 역사의 종말에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요한계시록이 그리는 마지막 장면은 영혼들이 세상을 떠나 비물질적인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이 땅에 내려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모습이다(계 21:1-3).
그곳에서 인류의 본질적 사명은 마침내 완전하고 영광스럽게 성취될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왕적 사명), 모든 눈물이 씻기고 아픔이 없는 완벽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및 서로와 교제할 것이다(관계적 사명). 또한 "만국의 영광"이 그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계 21:26)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가꾸어온 문화의 정수가 새 창조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을 암시한다(문화적 사명).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최종 목표는 창조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완전한 회복과 영화(榮化)이다. 에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성전-정원' 프로젝트는 마침내 온 땅을 덮는 '성전-도시'로 완성될 것이다.
이 거대한 서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발견한다. 우리의 본질적 사명은 거창한 종교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과 가정, 우리의 예술과 학문, 우리의 정치와 경제 활동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곧 태초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모습으로, 온전히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 진리야말로 파편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삶에 통일성과 목적, 그리고 영원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