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람 빙엄 (Hiram Bingham)

하와이의 사도, 하이람 빙엄: 카푸(Kapu)가 무너진 땅에 복음의 왕국을 세우다
서론: 신들이 사라진 낙원
1819년, 남태평양의 하와이 왕국에서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거대한 종교 혁명이 일어났다. 통일 왕국을 이룩한 위대한 카메하메하 1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은 카메하메하 2세와 강력한 섭정 카아후마누 여왕이 수백 년간 하와이 사회를 지배해 온 고대의 종교 체계, 즉 '카푸(kapu)'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신전은 파괴되었고, 신상들은 불태워졌으며, 복잡한 금기들은 사라졌다. 하와이는 하루아침에 신들이 사라진 '영적 진공' 상태에 빠졌다.

바로 그 이듬해인 1820년 4월,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모른 채, 5개월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하와이 해안에 도착한 한 척의 배가 있었다. 그 배에는 미국 최초의 하와이 선교단 '파이어니어 컴퍼니(Pioneer Company)'를 이끌고 온 30세의 젊은 선교사, 하이람 빙엄이 타고 있었다. 그는 이교의 강력한 사제들과 맞서 싸울 것을 각오했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스스로 신들을 버린 민족의 텅 빈 마음이었다.

하이람 빙엄의 삶은 이처럼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하나님의 타이밍'에 응답한 한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하와이에 문자를 만들어주고, 성경을 번역했으며,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헌법과 법률의 기초를 놓아 하와이 왕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오늘날 '위대한 복음의 아버지'라는 찬사와, '하와이 고유문화를 파괴한 문화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본 글은 마추픽추를 발견한 그의 유명한 손자가 아닌, 하와이의 사도였던 하이람 빙엄 1세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신들이 사라진 하와이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언어와 교육, 그리고 정치를 통해 하와이 사회를 변혁시킨 그의 사역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삶이 남긴 복합적인 유산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영적 진공 상태의 하와이, 준비된 선교사
하이람 빙엄의 하와이 선교는 미국 본토에서 시작된 작은 기도의 불씨에서 시작되었다.

오푸카이아의 눈물
19세기 초, 하와이 출신의 젊은 고아 헨리 오푸카이아(Henry ʻŌpūkahaʻia)가 코네티컷에 도착했다. 그는 예일 대학교 교정 문턱에 앉아 "내 안에도 배움이 있다"고 울부짖었고, 그의 총명함과 신앙에 대한 갈망은 곧 뉴잉글랜드 기독교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 훈련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하와이로 돌아가기 직전인 1818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하와이를 향한 그의 눈물의 기도는 미국 최초의 해외 선교 기관인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ABCFM)가 하와이에 첫 선교단을 파송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개척 선발대'와 하나님의 타이밍
버몬트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앤도버 신학교를 졸업한 하이람 빙엄은 바로 이 '개척 선발대(Pioneer Company)'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819년 10월, 그는 의사, 교사, 농부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14명의 동료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타데우스(Thaddeus)'호를 타고 보스턴을 떠났다.

5개월간의 고된 항해 끝에 1820년 4월 하와이에 도착한 그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불과 몇 달 전에, 하와이 왕국이 스스로 고대 종교인 '카푸' 체계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카푸'는 신들에 대한 복잡한 금기 체계로, 하와이 사회의 모든 질서를 규정하고 있었다. 왕과 여왕이 이 금기를 공개적으로 어김으로써, 하와이의 신들은 그 권위를 잃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빙엄과 선교단은, 영적으로 텅 비어 새로운 진리를 갈망하고 있던 준비된 땅에 도착한 것이다.

본론 2: 언어, 교육, 그리고 카아후마누 여왕의 회심
빙엄과 동료들의 첫 번째 과업은 하와이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문자와 성경, 그리고 폭발적인 교육열
당시 하와이어는 문자 없는 구어(口語)였다. 빙엄과 동료 선교사 윌리엄 엘리스 등은 하와이어의 음성 체계를 분석하여, 12개의 알파벳(모음 5개, 자음 7개)으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배우기 쉬운 문자 체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를 세워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문자 해독에 대한 하와이인들의 열망은 폭발적이었다. 왕과 귀족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로 몰려들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문자가 없던 하와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문해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교육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성경을 직접 읽게 하는 것이었다. 빙엄은 성경 번역 위원회를 이끌며, 1839년 마침내 하와이어 신구약 성경전서 번역을 완성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왕국의 강력한 후원자, 카아후마누 여왕
하와이 선교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카메하메하 1세의 가장 사랑받는 아내였으며, 당시 왕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던 카아후마누(Kaʻahumanu) 여왕이었다. 처음에는 선교사들을 경계했던 그녀는, 그들의 헌신적인 삶과 가르침에 점차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1825년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회심은 하와이 전체의 회심과도 같았다. 그녀는 전국의 신전들을 파괴하고, 기독교를 왕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다. 그녀는 빙엄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적 후원자가 되어, 기독교 윤리에 기반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그와 함께했다.

본론 3: 문명화 사역과 논쟁적인 유산
하이람 빙엄은 하와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문명화' 사역은 오늘날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기독교 왕국의 설계자
카아후마누 여왕의 후원 아래, 빙엄은 하와이 왕국의 비공식적인 최고 고문이 되었다. 그는 십계명에 기초한 최초의 성문법 제정에 깊이 관여했고, 서구식 입헌군주제 도입을 지지했다. 그가 목회했던 **카와이아하오 교회(Kawaiahaʻo Church)**는 산호초를 깎아 만든 돌로 지어졌으며, 하와이 왕족들이 대관식과 장례식을 치르는 '하와이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되었다.

문화 파괴라는 그림자
그러나 19세기 청교도였던 빙엄에게 '기독교화'는 곧 '서구화'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하와이 고유의 문화인 훌라(hula) 춤, 전통 노래(chant), 서핑, 그리고 문신 등을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이교도의 관습으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고 억압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하와이 고유문화의 많은 부분을 단절시키고 파괴하는 비극을 낳았다.

그의 사역은 또한, 당시 하와이를 드나들던 서양의 고래잡이 선원들과 상인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술과 매춘이 금지되자, 여러 차례 폭동을 일으키고 빙엄의 집을 공격하기도 했다.

결론: 하와이의 운명을 바꾼 거인
1840년, 20년간의 사역으로 건강이 악화된 하이람 빙엄은 하와이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1869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산은 영광과 오욕이 교차한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하와이 기독교의 아버지였다. 그는 하와이에 문자와 성경을 주었고,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었다. 그의 헌신과 희생은 숭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문화적 편견 속에서 하와이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하와이인들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때로 지배적이고 가부장적인 방식의 사랑이었다.

하이람 빙엄의 삶은 19세기 서구 선교가 가졌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그는 순수한 신앙과 놀라운 헌신, 그리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동시에 문화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었다. 그는 하와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한 위대한 건축가였지만, 그가 놓은 기초는 거룩함과 동시에 깊은 상처를 함께 품고 있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하와이에서 여전히 존경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가 하와이의 운명에 그토록 깊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