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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프랭클린 핼버슨 (Franklin Halverson)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로, 성서공회 총무로 재직하며 쉬운 우리말 성경 번역과 보급에 힘썼습니다.

'쉬운 성경'의 씨앗을 뿌린 번역가, 프랭클린 핼버슨
서론: 말씀의 쟁기질을 한 숨은 공로자
한국 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헌신 위에 세워져 있다. 그중에는 눈에 띄는 부흥사나 교육가도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말씀의 기초를 닦은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프랭클린 핼버슨은 바로 그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20세기 중후반,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대한성서공회 총무로 섬기며,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쉽고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위대한 성경 번역가이자 행정가였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공동번역 성서'**와 **'현대인의 성경'**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그는 단지 정확한 번역을 넘어, 평신도들이 일상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본 글은 이처럼 '말씀의 쟁기질'을 멈추지 않았던 프랭클린 핼버슨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격동의 한국사 속, 성서 보급의 길을 열다
1919년 미국에서 태어난 프랭클린 핼버슨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1952년 미국 성서공회 파송을 받아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 그가 마주한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모든 것이 파괴된 땅이었다.

대한성서공회 총무로서의 헌신
1956년부터 1971년까지 15년간 대한성서공회 총무로 재직하며, 그는 전후 한국 사회에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는 트럭을 이용한 '이동 성서 보급' 활동을 펼치고, 군부대와 학교, 병원 등 성경이 필요한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성경 번역 사업이었다.

공동번역 성서(1971년 신약, 1977년 완역): 그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참여하는 최초의 '에큐메니컬 번역'인 공동번역 성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비록 보수 교단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는 한국 교회의 연합과 대화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현대인의 성경(1985년 완역): 그는 전통적인 '개역 성경'의 문체가 현대인들에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대적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는 비전을 품고, '현대인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의 씨앗을 심었다. 이 성경은 훗날 수많은 젊은이들과 초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결론: 말씀의 기초를 놓은 건축가
1971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성서 번역과 보급 사역에 헌신하다가 1999년 세상을 떠났다. 프랭클린 핼버슨의 이름은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놓은 '쉬운 말씀'의 기초 위에서, 한국 교회는 풍성한 성경 연구와 묵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그의 삶은, 가장 위대한 사역이란 때로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기본적인 말씀의 기초를 닦는 묵묵한 헌신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는 한국 교회가 든든히 서 나갈 수 있도록, 말씀이라는 반석을 다진 위대한 건축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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