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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칼슨 (Paul Carlson)

콩고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다 1964년 심바 반란 당시 인질로 잡혀 순교했습니다.

'콩고의 순교자', 폴 칼슨: 사랑으로 섬기다, 믿음으로 죽다
서론: "이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합니다"
1964년 11월, 공산주의 반군에 의해 인질로 잡혀 있던 콩고의 스탠리빌(Stanleyville, 현재의 키상가니). 한 미국인 외과 의사는 처형될 위기 속에서도, 동료 인질들에게 자신은 결코 콩고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의사로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합니다." 며칠 후, 그는 반군의 총탄에 맞아 3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이름은 폴 칼슨. 그는 20세기 중반,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내전 속에서, 자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가장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다 순교한 위대한 의료 선교사였다.

그의 죽음은 당시 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다. 『라이프』 매거진은 그의 이야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그의 숭고한 희생은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선교와 인도주의적 헌신의 가치를 일깨웠다. 본 글은 이처럼 짧지만 강렬한 불꽃으로 살다 간 '콩고의 순교자' 폴 칼슨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캘리포니아의 의사, 콩고를 선택하다
1928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폴 칼슨은 조지 워싱턴 의과대학을 졸업한 유망한 외과 의사였다. 그는 성공적인 개업의로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길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실한 복음주의 언약교회(Evangelical Covenant Church)의 신자였던 그는, 자신의 의술을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소명을 느끼고 있었다.

1961년, 그는 6개월간 콩고의 한 선교 병원에서 단기 의료 봉사를 했다. 그는 그곳에서 수술 도구 하나 없이 맨손으로 생명을 살려야 하는 열악한 현실과, 수많은 사람들이 간단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콩고의 환자들을 잊을 수 없었고, 마침내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모든 것을 정리하고 1963년 콩고 와사(Wasa) 지역의 선교 병원으로 돌아왔다.

심바 반란과 순교
그가 돌아온 콩고는 독립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1964년, 공산주의 성향의 '심바(Simba, 사자라는 뜻)' 반군이 봉기를 일으켜, 그가 사역하던 지역을 점령했다. 반군은 백인들을 '미국 제국주의의 스파이'로 간주하여 인질로 잡았고, 칼슨 역시 반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반군 지도자들을 치료해주며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악화되었다. 1964년 11월 24일, 벨기에 군과 용병들이 인질 구출 작전을 시작하자, 당황한 반군들은 인질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폴 칼슨은 이 혼란 속에서, 다른 인질들을 돕기 위해 벽을 넘으려다 반군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결론: 죽음으로 이어진 헌신
폴 칼슨의 순교는 미국 사회에 큰 슬픔과 함께 깊은 성찰을 안겨주었다.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미국에서는 **'폴 칼슨 의료 프로그램(The Paul Carlson Medical Program)'**이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의 의료 발전을 돕고 있다.

그의 삶은 매우 짧았고, 그가 직접 치료한 환자의 수는 제한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자신의 안위를 넘어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위대한 설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증거했고, 마침내 죽음으로 그 증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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