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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 크로스비 (Fanny Crosby)
맹인 찬송가 작사가로,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등 8,000편이 넘는 찬송시를 통해 전 세계 성도들에게 신앙의 위로와 영감을 주었습니다.

'찬송가의 어머니', 패니 크로스비: 어둠 속에서 영원의 빛을 노래하다
서론: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인애하신 구세주여", "너희 죄 흉악하나". 이 찬송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난 150년 동안 전 세계 수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을 통해 불리며, 기쁨과 슬픔의 순간에 가장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던 노래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멸의 가사들이, 태어난 지 6주 만에 시력을 잃어 평생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았던 한 맹인 여성의 마음에서 흘러나왔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녀의 이름은 패니 크로스비, '미국의 찬송가 여왕', '찬송가의 어머니'라 불리는 위대한 찬송시 작가이다.
그녀는 선교사나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쓴 찬송가들은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깊이, 더 멀리, 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진리를 심어주었다. 그녀의 삶은 육신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이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결코 저주나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천국에서 처음으로 보게 될 얼굴이 바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얼굴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고 고백했다.
본 글은 이처럼 '어둠 속의 시인'이었던 패니 크로스비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녀가 어떻게 신체적 장애를 넘어 위대한 찬송시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그녀의 찬송가들이 가진 특징과 그 깊은 영성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노래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어둠 속에서 싹튼 비범한 재능
프랜시스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생후 6주 때, 눈병 치료를 위해 찾아간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그녀는 평생 시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 특히 할머니는 그녀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왔다. 할머니는 어린 패니에게 성경 전체를 읽어주고 암송하게 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묘사해주며 그녀의 마음속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녀의 비범한 재능은 뉴욕 맹인 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그녀는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8살 때 이미 첫 시를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다. 그녀는 맹인 학교의 교사로 11년간 재직하며,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저명인사들 앞에서 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이미 젊은 시절부터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본론 2: "내 영혼이 은총 입어" - 찬송가 작가로서의 소명
그녀의 삶이 '찬송가 작가'라는 구체적인 소명으로 이어진 것은, 1864년 44세의 나이에 작곡가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radbury)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브래드버리는 그녀의 시적 재능을 발견하고, 찬송가 가사를 써줄 것을 제안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창작열은 폭발했다. 마치 막혔던 둑이 터진 것처럼, 그녀의 마음속에서 찬송시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종종 하루에 서너 편, 때로는 여섯 편 이상의 찬송시를 썼다. 그녀는 멜로디를 먼저 듣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D. L. 무디의 부흥 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했던 아이라 생키(Ira Sankey)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복음성가 작곡가들이 그녀의 시에 곡을 붙였고, 그녀의 찬송가들은 부흥 집회를 통해 미국과 영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패니 크로스비 찬송가의 특징
그녀의 찬송가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간증: 그녀의 가사는 대부분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나의 갈 길 다가도록"처럼, '나'라는 1인칭 시점에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고백한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노래를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단순하고 명료한 복음: 그녀의 찬송가에는 복음의 핵심 진리, 즉 죄에 대한 고백, 십자가의 구속,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언어로 담겨 있다.
넘치는 기쁨과 확신: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그녀의 찬송가에는 절망이나 슬픔 대신, 구원의 기쁨과 천국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그리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가득 차 있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작품을 썼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한 사람의 이름만 계속 올리는 것을 꺼려, 200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쓴 찬송시의 총 숫자는 8,000편에서 9,000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 눈먼 자, 세상을 보게 하다
1915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패니 크로스비는 멈추지 않고 찬송시를 썼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에도 헌신하여,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저작권 수입 대부분을 빈민 구제 사역에 기부했다. 그녀의 묘비에는 그녀가 쓴 찬송가 "두렴 없네 내가 Risen"의 한 구절,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볼 첫 얼굴이 될 것이다(She hath done what she could)"라는 소박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실제 묘비명은 "Aunt Fanny... She hath done what she could." 입니다. 찬송가 가사는 그녀의 소망을 표현한 말로 유명합니다.)
패니 크로스비의 유산은 그녀가 남긴 수천 편의 찬송가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녀는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선명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았고, 그것을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 수많은 영혼들의 눈을 뜨게 했다.
그녀의 삶은, 우리의 가장 큰 장애와 결핍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위대하게 드러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이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빛을 노래했고, 그 노래는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영혼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