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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티모시 리처드 (Timothy Richard)

중국에서 기근 구제, 교육, 출판 활동을 통해 사회 개혁에 영향을 미친 영국 침례교 선교사입니다.

중국의 계몽가, 티모시 리처드: 굶주린 땅에 빵과 복음을 전하다
서론: 굶주리는 자 앞에서의 설교
19세기 말 중국 산서성(山西省), 수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대기근의 현장. 한 웨일스 출신의 젊은 침례교 선교사가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무력감과 회의에 빠졌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빵이 곧 하나님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내세의 영생을 설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뼈아픈 성찰은 그의 남은 생애와 선교 방식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의 이름은 티모시 리처드, 중국 이름으로는 리티모태(李提摩太)이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영혼 구원에만 집중하던 당대의 많은 선교사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기독교의 사명이 단지 개인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보내는 것에만 있지 않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실현하는 것, 즉 가난과 무지, 그리고 불의로 고통받는 사회 전체를 변혁시키는 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총체적 선교'의 비전 아래, 그는 기근 구호 운동의 위대한 조직가가 되었고, 서구의 근대 학문과 사상을 중국에 소개하는 계몽가이자 출판인이었으며, 이홍장(李鴻章)과 같은 청나라 최고위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았던 '선교사-정치가'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사회 참여적인 선교 방식과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는, 허드슨 테일러를 비롯한 보수적인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의 순수성을 저버렸다'는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본 글은 이처럼 논쟁적이지만 선구적인 삶을 살았던 티모시 리처드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산서 대기근이 어떻게 그의 선교 철학을 바꾸었는지 살펴보고, 교육과 출판을 통해 중국 사회의 개혁을 이끌고자 했던 그의 사역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대를 앞서간 비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산서 대기근 - 한 선교사의 운명을 바꾸다
1870년 중국에 도착한 티모시 리처드의 초기 사역은 다른 선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을을 다니며 설교하고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지만,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깊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옥도(地獄圖) 속에서 하나님을 보다
그의 사역과 인생의 분수령이 된 것은 1876년부터 3년간 중국 북부를 휩쓴 끔찍한 대기근이었다. 특히 그가 있던 산서성은 피해가 극심하여, 9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사람들은 흙이나 나뭇잎으로 연명했으며, 심지어 인육을 먹는 참상까지 벌어졌다.

이 지옥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리처드는 더 이상 말로만 복음을 전할 수 없었다. 그는 즉시 구호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국제 사회에 기근의 참상을 알리는 보고서를 보내 구호 기금을 모금했고, 체계적인 구호 시스템을 조직하여 수십만 명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구호 활동을 통해, 말로 설교할 때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경험은 그의 선교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기독교의 사명이 개인의 영혼 구원을 넘어,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무지와 같은 사회 구조적인 악과 싸우는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기근의 근본적인 원인이 낡은 농업 기술과 낙후된 교통 시스템, 그리고 부패한 관료주의에 있음을 간파하고, 중국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회 개혁과 근대화가 필수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본론 2: '하나님 나라'의 비전 - 교육과 출판을 통한 개혁
대기근 이후, 리처드의 선교 전략은 대중을 향한 직접적인 전도에서, 사회의 상층부, 즉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지식인과 관료 계층을 계몽하는 '상향식(top-down)' 접근으로 전환되었다. 그는 중국 사회 전체가 기독교적 가치 위에 세워진 근대 국가로 변혁되는 것을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그렸다.

광학회(廣學會)와 만국공보(萬國公報)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출판'이었다. 1891년, 그는 상하이의 '기독교서적및대중지식보급회(The Society for the Diffusion of Christian and General Knowledge)', 약칭 '광학회(廣學會)'의 총 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지도 아래, 광학회는 단순히 성경이나 전도지를 출판하는 곳을 넘어, 서구의 근대 학문과 사상을 중국에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창구가 되었다. 광학회는 과학, 역사, 경제, 법률, 국제 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서구 고전과 최신 서적들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했다. 또한, 그가 발행한 신문 **'만국공보(萬國公報)'**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신문은 세계의 소식과 새로운 사상을 전하며, 캉유웨이(康有為), 량치차오(梁啟超) 등 훗날 '무술변법(戊戌變法)'과 같은 개혁 운동을 이끌게 될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필독서로 여겨졌다.

개혁 군주들의 조언자
리처드는 출판 활동을 통해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이홍장, 장지동(張之洞)과 같은 청나라 최고위 관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신뢰받는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철도 건설, 현대식 교육 시스템 도입, 그리고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산서 대기근 구호 기금의 남은 돈을 사용하여, 1902년 중국 최초의 근대 대학 중 하나인 **산서대학(山西大學)**을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선교사가 교회 담장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본론 3: 논란의 중심에 선 선교사
그러나 리처드의 이러한 혁신적인 선교 방식은 당대의 보수적인 선교사들, 특히 허드슨 테일러가 이끌던 중국내지선교회(CIM)와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허드슨 테일러와의 논쟁
허드슨 테일러를 비롯한 많은 복음주의 선교사들은 리처드의 '사회 복음'적 접근을 비판했다. 그들은 선교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표는 개인의 회심과 영혼 구원이며, 사회 개혁이나 정치 참여는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세속적인 활동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리처드가 '하나님의 나라'를 내세의 영적인 나라가 아닌, 이 땅 위에 세워질 유토피아적인 사회로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
리처치의 신학적 입장은 다른 종교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도 논란을 낳았다. 그는 다른 종교, 특히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를 단순히 미신이나 사탄의 작품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 속에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자비심과 같은 고귀한 진리의 파편들이 담겨 있으며, 이것이 훗날 그리스도의 완전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과정(praeparatio evangelica)'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관용적인 태도는, 다른 종교와의 타협을 거부했던 보수적인 선교사들에게는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라는 심각한 이단 행위로 비쳤다.

그러나 리처드는 자신이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을 언급하며 복음의 접촉점을 찾았던 것처럼,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결론: 시대를 앞서간 선지자적 통찰
191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티모시 리처드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자신의 비전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중국을 사랑했고, 중국이 단지 서구 열강의 반(半)식민지가 아니라, 기독교 문명의 가치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위대한 국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했다.

그의 유산은 복합적이다.

그는 위대한 인도주의자였다. 그의 기근 구호 활동은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했으며, 자선 활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 근대화의 숨은 공로자였다. 그가 발행한 책과 신문은 한 세대 중국 지식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중국의 개혁과 혁명의 지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총체적 선교'의 선구자였다.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교회의 통합된 사명으로 보는 그의 비전은, 훗날 20세기 후반 로잔 언약 등을 통해 복음주의권의 중요한 신학적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는 시대를 너무나 앞서갔던 선지자였다.

티모시 리처드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회의 사명은 단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구조적인 악과 불의에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까지 포함하는가? 티모시 리처드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후자가 복음의 온전한 모습임을 증거하고자 했다. 그의 삶은 영혼과 육신,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는 이원론적 신앙을 넘어,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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