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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네비우스 (John L. Nevius)
중국 선교사였으며, 그의 '네비우스 방법'은 자립 전도, 자력 정치, 자력 운영을 핵심으로 하여 한국 초기 선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설계자, 존 네비우스: 한국 교회의 DNA를 형성하다
서론: 보이지 않는 설계자, 한국 교회의 기틀을 놓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마펫과 같은 위대한 현장 선교사들의 이름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 이면에,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는 자립적이고 역동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독특한 '설계도'를 제공한 한 명의 이론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존 네비우스. 그는 비록 한국에서 직접 사역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제시한 **'네비우스 선교 정책(The Nevius Method)'**은 한국 초기 선교의 DNA를 형성하고, 이후 100년의 한국 교회사를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선교 전략이 되었다.
그는 40년간 중국 산둥성에서 사역했던 베테랑 선교사였다. 그는 자신의 오랜 경험과 실패를 바탕으로, 서구 선교 자금과 인력에 의존하는 '의존적인' 선교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립하는 토착 교회'를 세우기 위한 혁신적인 원칙들을 체계화했다. 그의 방법론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지만, 한국의 선교사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는 한국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부흥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본 글은 이처럼 '한국 교회의 보이지 않는 설계자'였던 존 네비우스의 생애와 그의 핵심적인 선교 전략을 탐구하고자 한다.
본론: '3자 원리'를 넘어선 구체적인 실천 방안
존 네비우스는 182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1854년 미국 북장로회 파송을 받아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는 닝보(宁波)와 산둥(山东) 지역에서 40년간 사역하며, 선교의 성공이 단순히 개종자의 숫자가 아니라 '건강한 자립 교회의 설립'에 있음을 깨달았다.
1890년,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젊은 선교사들의 초청을 받아 서울에서 약 2주간 머물며 자신의 선교 철학에 대한 특강을 했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네비우스 선교 정책' 강의였다. 그의 정책은 헨리 벤이나 루퍼스 앤더슨이 제시했던 '3자 원리(자치, 자립, 자전)'의 이상을, 구체적인 현장 실천 방안으로 체계화한 것이었다.
그의 핵심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자력 전도 (Self-propagation): 선교사는 순회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하고, 실제적인 전도와 교회 성장의 책임은 현지인 평신도들에게 맡긴다. 모든 신자가 곧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자력 통치 (Self-government): 교회는 처음부터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신실한 현지인 지도자(조사, 助事)와 장로들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 선교사는 이들을 훈련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자력 재정 (Self-support): 교회 건물 건축비나 사역자의 사례비를 선교 자금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모든 재정은 현지인 성도들 자신의 헌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의존성을 막고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체계적인 성경 공부: 모든 신자는 '사경회(査經會)'와 같은 성경 공부반에 의무적으로 참여하여,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교육과 의료는 부차적 사역: 학교나 병원 설립은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이라는 최우선 목표가 달성된 후에 고려되어야 한다.
이 정책은 당시 선교 자금을 통해 학교와 병원을 먼저 짓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매력 위주(attractional)' 선교 방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국의 젊은 선교사들은 이 '느리고 어려운' 길이야말로, 건강하고 자생력 있는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고 이를 자신들의 공식적인 선교 정책으로 채택했다.
결론: 한국 교회의 독특한 정체성을 낳다
존 네비우스의 정책은 한국 교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강력한 평신도 중심 교회: 모든 신자가 전도와 사역의 주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자립 정신과 주인의식: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재정적으로 자립하여, 선교사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뜨거운 성경 공부 열기: '사경회' 전통은 한국 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교회 중 하나로 만들었다.
비록 '교육과 의료 사역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실제 현장에서 100% 그대로 적용되지는 못했지만, 네비우스의 '자립 교회' 정신은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 교회가 일제강점기의 핍박과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는 한국에 직접 와서 살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선교사보다도 더 깊이 한국 교회의 미래를 설계한 위대한 건축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