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오스왈드 J. 스미스 (Oswald J. Smith)
캐나다의 목회자로, 자신의 교회를 '선교 중심적 교회'의 모델로 만들어 전 세계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선교 중심적 교회'의 모델, 오스왈드 J. 스미스: 모든 교인은 선교사다
서론: "가든지, 보내든지, 거역하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거나, 선교사를 방해하는 자이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지대는 없다." 이 도전적이고 단호한 선언은, 20세기 북미 교회를 향해 세계 선교의 시급성과 모든 성도의 책임을 외쳤던 캐나다의 위대한 목회자, 오스왈드 J. 스미스의 핵심 메시지였다. 그는 "왜 어떤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수백 번 복음을 듣는데, 어떤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죽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교회의 모든 인력과 재정, 그리고 기도가 '땅끝'을 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직접 해외 선교사로 평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담임했던 '피플스 교회(The Peoples Church)'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선교 중심적 교회'의 모델로 만들어냈다. 그는 선교가 일부 전문가의 특별한 사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 교회의 가장 우선적이고 본질적인 사명임을 자신의 목회 전체를 통해 증명했다. 그는 또한 1,200곡이 넘는 찬송가를 작사/작곡한 찬송가 작가이기도 했다.
본 글은 이처럼 '선교 동원가'로서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오스왈드 J. 스미스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의 '선교 중심적 교회'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비전이 어떻게 피플스 교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는지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메시지가 오늘날 교회의 사명과 우선순위에 대해 던지는 도전을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선교가 먼저다(Missions First)"
1889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오스왈드 J. 스미스는 젊은 시절부터 해외 선교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었으나, 약한 건강 때문에 현장 선교사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이 좌절을 통해, 자신이 직접 '가는' 선교사가 될 수 없다면, 수많은 선교사들을 '보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새로운 소명을 발견했다.
피플스 교회: 선교를 위한 기지
1928년, 그는 토론토에 **피플스 교회(The Peoples Church)**를 개척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세계 선교'임을 분명히 했다. 그의 목회 철학은 "선교가 먼저다(Missions First)"라는 구호로 요약될 수 있었다.
믿음의 선교 헌금 (Faith Promise Missions Offering): 그는 교회의 재정 운영에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매년 성도들은 정해진 액수를 약정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주실 것이라고 믿는 금액을 '믿음으로' 약정하여 선교 헌금으로 드렸다. 이는 성도들이 수동적인 헌금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능동적인 선교 동역자가 되게 했다.
선교사 파송과 돌봄: 피플스 교회는 교회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선교사 파송과 후원에 사용했으며, 파송된 선교사들을 단순한 재정 지원의 대상을 넘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족'으로 여기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소통했다.
연례 선교 대회: 매년 열리는 선교 대회는 교회력의 가장 중요한 절기였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생생한 현장의 소식을 듣고, 온 교회가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교 중심적 목회'를 통해, 피플스 교회는 단일 지역 교회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전설적인 교회가 되었다.
결론: 모든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1986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스왈드 J. 스미스는 한결같이 "교회의 최우선 과업은 세계 복음화"임을 외쳤다. 그는 선교를 교회의 여러 활동 중 하나가 아닌, 교회의 '심장' 그 자체로 만들었다.
그의 유산은 명확하다. 그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수십 년 전에, 이미 그 모델을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선구자였다. 그의 삶과 사역은 오늘날 내적 성장에만 치중하며 세상 속의 사명을 잃어버린 수많은 지역 교회들에게, 교회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강력한 도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