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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사도 바울 (Apostle Paul)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저술했으며, 세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로마 제국 전역에 교회를 세운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사도 바울 (Apostle Paul): 초대 교회의 건축가이자 기독교 신학의 초석
서론: 기독교 역사의 거인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한 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도 바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는 단순히 초대 교회의 수많은 사역자 중 한 명이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를 팔레스타인의 작은 유대교 분파에서 세계적인 종교로 변모시킨 핵심 동력이었고, 신약성경의 약 3분의 1을 저술하여 후대 기독교 신학의 방향을 설정한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전파한 불굴의 선교사였다.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와 같다. 그는 교회의 가장 맹렬한 박해자 '사울'에서 시작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의 극적인 회심을 통해 복음의 가장 위대한 수호자 '바울'로 거듭났다.

바울의 영향력은 특정 시대나 교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서신서는 지난 2000년간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칼 바르트와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으며, 수많은 부흥과 개혁 운동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그가 역설한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고,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인,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없다는 그의 선포는 인류 평등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 글은 이처럼 기독교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먼저 그의 초기 생애와 극적인 회심 과정을 추적하며 '박해자 사울'이 어떻게 '사도 바울'이 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그의 세 차례에 걸친 위대한 선교 여행을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로마 제국 곳곳에 교회의 기초를 놓았는지 알아볼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서신서에 나타난 핵심적인 신학 사상들, 즉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그가 기독교 교리의 건축가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역과 사상이 후대 기독교와 세계사에 미친 막대한 영향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이라는 한 인물의 삶이 어떻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수십억 인류의 영적 지형도를 그려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본론 1: 박해자 사울에서 사도 바울로의 극적인 전환
바울의 위대한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출발점을 알아야 한다. 그의 이름은 원래 사울이었고, 그는 초대 교회가 마주했던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다.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엘리트 바리새인
사울은 주후 5-10년경, 소아시아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인 다소(Tarsus)에서 태어났다. 다소는 당시 헬레니즘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로마 제국의 중요한 도시였다. 이러한 배경은 사울에게 두 가지 정체성을 부여했다. 첫째,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층이었다. 이는 훗날 그의 선교 여행과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인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둘째, 그는 헬라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한 도시에서 성장하며 이방 세계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핵심 정체성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스스로를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 자부했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유대인이었고, 사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당대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게 했다. 가말리엘은 비교적 온건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제자 사울은 열심이 특심한 바리새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고, 이를 지키려는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그에게 율법 준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얻는 유일한 길이었고, 이러한 신념은 신생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적개심의 원천이 되었다.

교회의 박해자,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사도행전은 사울이 교회의 박해에 앞장섰음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초대 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비극적인 현장이다. 그는 직접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 8:1)고 기록될 만큼 박해에 동조하고 이를 주도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사울의 박해는 더욱 조직적이고 잔혹해졌다. 그는 대제사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예루살렘 교회를 잔멸시키려 했다. 그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내어 옥에 넘겼다. 그의 위협과 살기는 예루살렘을 넘어섰고, 심지어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시기 사울에게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무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독하고 유대교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이단 집단에 불과했다. 그의 박해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왜곡된 열심에서 비롯된 신념의 행위였다.

다마스쿠스 도상의 빛과 음성: 완전한 전복
다마스쿠스를 향해 살기등등하게 달려가던 사울의 인생은 정오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과 함께 180도 전복되었다. 사도행전은 이 극적인 사건을 세 번에 걸쳐 상세히 기록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그는 땅에 엎드러졌다. 그리고 한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묻자, 음성은 답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 사건은 단순한 환상이나 심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울의 세계관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재구성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실제적인 만남이었다. 그가 저주받은 자, 율법을 어긴 자로 여겨 나무에 달려 죽었다고 믿었던 예수가, 실은 하나님에 의해 높임 받으신 주(Lord)와 그리스도(Messiah)이심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행한다고 믿었던 모든 박해 행위가 실제로는 하나님 자신, 즉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었음을 직면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 충격으로 사울은 시력을 잃었고,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다. 그는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자신의 지난 삶과 새로운 계시 앞에서 씨름했다. 이때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 그에게 안수하게 하셨다. 아나니아가 안수하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그는 즉시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이로써 교회의 가장 큰 적이었던 '사울'은 죽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이 탄생했다. 이 회심 사건은 바울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역사를 바꾸는 분수령이 되었다.

본론 2: 위대한 선교 여행 – 땅끝을 향한 복음의 행진
다마스쿠스에서의 회심 이후, 바울은 즉시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의 본격적인 선교 여행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과 마지막 로마로의 여정은 지중해 세계의 지도를 다시 그렸고,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에 교회의 굳건한 초석을 놓았다.

제1차 선교 여행 (주후 46-48년경): 이방 선교의 문을 열다
바나바와 함께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된 바울은 첫 번째 선교 여행에 나선다. 그들의 여정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 섬에서 시작하여, 소아시아 남부의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로 이어졌다. 이 여행에서 몇 가지 중요한 패턴이 나타났다.

첫째, 바울은 언제나 먼저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그는 동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가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논증했다. 둘째, 유대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소수의 유대인과 많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대다수 유대인들은 시기심과 분노로 바울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박해했다. 셋째, 유대인들의 거부 앞에서 바울은 담대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고 선포하며, 선교의 중심을 이방인에게로 옮겼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했다가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오인받아 제사를 받을 뻔하기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반대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이처럼 1차 선교 여행은 복음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신호탄이었으며, 동시에 복음 전파에 따르는 혹독한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루살렘 공의회 (주후 49년경): 복음의 본질을 수호하다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안디옥 교회에 큰 신학적 논쟁이 불거졌다. 유대에서 온 어떤 이들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적 의무를 부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갓 시작된 이방인 선교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사도들과 장로들과 함께 공적인 회의를 열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의회이다. 치열한 변론 끝에, 베드로가 고넬료의 회심 사건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음을 증언했다. 이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기적과 표적을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회의를 주재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이방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확증하고, 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지우는 대신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는 최소한의 권고 사항만을 전달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정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바울의 복음의 핵심을 공인한 사건이었다. 이로써 기독교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민족을 향한 보편적인 종교로 나아갈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확보하게 되었다.

제2차 선교 여행 (주후 49-52년경): 복음, 유럽의 문을 두드리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승리 이후,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선교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소아시아에서 사역하던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본 것이다. 마게도냐(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환상이었다. 바울은 이를 유럽으로 자신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하고 즉시 에게해를 건넌다.

유럽의 첫 성(城)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은 자주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나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운다. 하지만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일로 인해 고소당하여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를 본 간수는 회개하고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 이어서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 철학의 중심지 아덴(아테네)에 도착한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보고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과 부활의 복음을 변증한다.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는 복음이 헬라 철학의 심장부와 정면으로 마주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상업 도시 고린도에서 1년 6개월간 머물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동역하고 강력한 교회를 세움으로써, 2차 선교 여행은 유럽 선교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위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제3차 선교 여행 (주후 53-57년경): 에베소, 선교의 중심지가 되다
3차 선교 여행의 중심지는 단연 에베소였다. 바울은 소아시아 서부 해안의 이 거대한 도시에 약 3년간 머물며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그의 사역은 매우 강력하여,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고 할 정도였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책을 불사르며 회개하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그러나 에베소는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바울의 사역은 우상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주도한 폭동으로 인해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야 했지만, 그의 오랜 사역은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깊이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고린도전후서와 로마서와 같은 중요한 서신들을 기록했다.

로마를 향한 마지막 여정: 죄수, 그러나 복음의 대사
3차 선교 여행을 마친 바울은 성령의 이끄심과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결박과 환난을 예감했지만,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했다.

그의 예감대로,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로마 군인들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2년간 구금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신앙과 복음을 담대하게 변증했다. 마침내 로마 시민으로서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를 사용하여,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된다. 로마로 가는 길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파선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바울은 죄수가 아닌,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영적 지도자이자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로마에 도착한 그는 비록 가택에 연금된 상태였지만, 2년 동안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행 28:31). 사도행전은 이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이는 복음이 마침내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로마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말이다.

본론 3: 바울 신학 - 기독교 교리의 초석을 놓다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세운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의 신학은 학문적 탐구의 산물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만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선교 현장에서의 치열한 목회적 고민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의 13개 서신서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이신칭의: 구원의 유일한 길
바울 신학의 심장부는 단연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교리이다. 이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가장 명확하게 전개된다. 바울은 먼저 모든 인간의 실존적 상태를 진단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죄의 노예 상태에 있으며, 스스로의 힘이나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의 역할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갈 3:24)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바울은 단호하게 선포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갈 2:16).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자격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인류의 죄 값을 치르셨고, 인간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아무 공로 없이 '의롭다'고 선언 받는다. 이 '칭의'는 법정적 선언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하나님 앞에서 무죄한 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리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 교만을 무너뜨리고, 구원의 주권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두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의 모든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다. 그의 서신서에는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표현이 160회 이상 등장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신자의 새로운 정체성이자 삶의 모든 영역을 규정하는 실재임을 보여준다.

바울의 기독론은 매우 심오하다. 예수는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선지자가 아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이며, 만물이 그를 통해 창조되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스스로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빌 2:6-7). 그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으로, 죄에 대한 형벌인 동시에 인류와의 화해를 이루는 대속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결정적인 승리이며, 모든 믿는 자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 된다. 신자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었으며, 그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다(롬 6:3-4). 이처럼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구원의 길일 뿐만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요 역사의 중심이며, 신자들의 삶의 모든 것이 된다.

성령과 성화: 새로운 삶의 원리
바울에게 구원은 칭의라는 법적인 신분 변화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시작되는 실제적인 삶의 변화, 즉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이 성령은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바울은 인간 내면의 치열한 영적 싸움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갈등으로 묘사한다(갈 5:17). 육체는 죄로 오염된 옛 자아를 따르려 하지만, 성령은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이끄신다. 신자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그의 삶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된다(갈 5:22-23). 또한 성령은 교회 공동체에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각 지체가 서로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게 하신다. 이처럼 성화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격과 삶의 변화이다.

교회: 그리스도의 몸
바울의 신학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나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고전 12:27; 엡 1:23)이라는 유기체적 비유로 설명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각 신자는 몸의 다양한 지체가 된다. 눈, 손, 발이 각기 다른 기능을 하지만 하나의 몸을 이루듯,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가진 신자들이 있지만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특히 바울은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던 율법의 장벽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허무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물이다(엡 2:14-16). 따라서 교회 안에서는 인종, 사회적 신분, 성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지체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약한 지체를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이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주체이다.

결론: 영원한 유산, 살아있는 도전
사도 바울의 삶과 사상은 2000년 기독교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산맥과 같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했으며, 유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세계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불굴의 선교 열정은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복음의 깃발을 꽂았고, 그가 세운 교회들과 기록한 서신서들은 오늘날 세계 최대 종교인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된 그의 극적인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어떠함을 넘어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그의 험난했던 선교 여정은 복음을 위한 고난의 가치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증언한다. 그가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서신서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영원한 교과서가 되었다. '이신칭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령의 내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등 그가 정립한 신학적 개념들은 기독교 사상의 대들보로서 굳건히 서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을 이끌었고, 루터의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으며, 웨슬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바울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은 안주하려는 우리의 신앙에 경종을 울리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대위임 명령의 무게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의 신학은 피상적인 종교 행위에 만족하려는 우리를 향해 오직 믿음과 은혜의 깊이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기독교 신앙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의 삶은 복음이 한 인간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그의 사역은 그 복음이 온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우리는 그의 거대한 어깨 위에 서서 우리의 신앙을 이해하고, 그의 뜨거운 심장을 통해 우리의 사명을 발견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한 위인을 탐구하는 것을 넘어,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로 들어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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