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로버트 피어스 (Robert 'Bob' Pierce)
한국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후 '가장 궁핍한 이들을 돕겠다'는 서원으로 국제 월드비전과 사마리안 퍼스를 설립했습니다.

"내 심장이 아파서 울게 하소서": 월드비전 창립자, 밥 피어스의 뜨거운 연민
서론: 한 소녀의 눈물, 세계를 움직이다
1947년 중국의 한 섬, 젊은 미국인 종군 기자이자 복음 전도자였던 밥 피어스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매 맞으며 굶주리는 어린 소녀의 참상을 마주했다. 그를 안내하던 선교사에게 소녀를 도울 방법을 물었지만, 선교사는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 더 이상 여력이 없다고 답했다. 소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피어스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마지막 남은 5달러와 성경책을 선교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아이를 돌봐주십시오. 매달 돈을 보내겠습니다."
이 운명적인 만남이, 훗날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수백만 명의 어린이를 돕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World Vision)**을 탄생시킨 첫 씨앗이 되었다. 밥 피어스는 전통적인 선교사와는 달랐다. 그는 불타는 저널리스트의 감각과,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는 뜨거운 연민의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유명한 기도, "주여, 내 심장이 다른 이들의 아픔 때문에 아파서 울게 하소서(Let my heart be broken with the things that break the heart of God)"는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외침이었다.
본 글은 이처럼 '깨어진 심장'으로 세상을 품었던 밥 피어스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가 어떻게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필요에 눈을 뜨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월드비전과 사마리안 퍼스라는 두 개의 위대한 구호 기관을 설립한 그의 사역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긍휼'과 '실천'의 의미를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전쟁터에서 만난 하나님의 마음
1914년 미국에서 태어난 밥 피어스는 '거리의 설교자'라 불릴 만큼 열정적인 젊은 부흥사였다. 그의 삶이 세계를 향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면서부터였다.
한국전쟁의 고아들
'국제청년(Youth for Christ)' 소속의 종군 기자이자 전도자로서 1950년 한국을 방문한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부모를 잃고 굶주리는 수많은 전쟁고아들의 비참한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카메라와 필름을 들고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며, 미국 교회와 사회에 이들을 도와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그의 호소에 응답하여, 미국 전역의 교회와 개인들이 후원금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1950년, 그는 이 후원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월드비전(World Vision)**을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월드비전의 첫 사역은 바로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세우고, '1대1 아동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후원자와 아동을 연결해주는 것이었다.
본론 2: 월드비전과 사마리안 퍼스 - 두 개의 위대한 유산
밥 피어스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는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직접 촬영한 생생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을 서구 세계에 알렸다.
월드비전의 성장
그의 열정과 비전 아래, 월드비전은 한국을 넘어 베트남, 인도 등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모든 곳으로 사역을 확장해나갔다. 월드비전은 단순한 구호물자 전달을 넘어, 지역 사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개발 사업과 교육, 보건 사업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구호개발기구로 성장했다.
그러나 피어스는 때로 자신의 불같은 성격과 독단적인 리더십 스타일로 인해 동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67년, 그는 자신이 창설한 월드비전의 총재직을 사임했다.
사마리안 퍼스의 탄생
월드비전을 떠난 후에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70년, 그는 또 다른 국제 구호기구인 **사마리안 퍼스(Samaritan's Purse)**를 창설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지갑'이라는 뜻의 이 단체는, 전쟁, 기근, 자연재해 등 긴급한 위기 상황에 처한 전 세계의 이재민들에게 신속하게 구호 물품과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사역에 집중했다. 이 사역은 훗날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에게 계승되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결론: 깨어진 심장으로 세상을 품다
1978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밥 피어스는 고통받는 이들의 신음 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평생을 아시아의 먼지 나는 길 위에서 보냈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개의 기독교 구호 단체를 남겼다.
그의 유산은 명확하다.
그는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연결했다. 그는 세상의 고통을 단지 멀리서 동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 현장으로 달려가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긍휼의 세계화'를 이루었다. 그는 1대1 아동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평범한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구 반대편의 한 아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책임지고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밥 피어스의 삶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의 아픔을 바라볼 때, 한 사람의 깨어진 심장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이다. 그의 기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주여,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로 인해 함께 아파 울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