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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나치에 저항하며 '고백교회'를 이끌었고, 그의 저서 '제자도의 대가'는 선교적 삶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히틀러에 맞선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대가를 지불하는 제자도의 길
서론: "값싼 은혜는 교회의 철천지 원수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철천지 원수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이 날카로운 외침은, 20세기 가장 어두웠던 시대의 한복판에서, 광신적인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제국에 야합(野合)하며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독일 교회의 양심을 향해 한 젊은 신학자가 던진 예언자적 경고였다. 그의 이름은 디트리히 본회퍼. 그는 안락한 강단과 서재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고난받는 교회'의 길을 택했으며, 마침내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순교자였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의 삶 전체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치열하고 급진적인 선교적 증언이었다. 그는 신앙을 개인적인 경건이나 내세의 축복에 가두지 않고, 이웃의 고통에 응답하고 시대의 불의에 맞서는 구체적인 '책임'의 문제로 보았다. 그의 대표작 『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와 옥중서신들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 안일함에 빠진 우리에게 '제자도의 대가'를 묻는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다.
본 글은 이처럼 '행동하는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와 유산을 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생애를 결정지은 나치즘과의 투쟁과 '고백교회'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로 대표되는 그의 핵심 신학과 '세속 속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그의 후기 사상을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순교가 20세기 신학과 윤리에 어떤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 조명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본론 1: 고백교회 - 히틀러의 광기에 맞서다
1906년 독일의 명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디트리히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천재 신학자였다. 그는 21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뉴욕의 유니언 신학교 방문 교수와 런던의 독일인 교회 목회 등을 거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있었다. 그에게는 세계적인 신학자로서의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었다.
독일 교회의 타락과 '고백교회'의 저항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그의 삶의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독일 개신교회의 대다수는 히틀러의 국가주의적 야망에 동조하여 '독일 기독교회(German Christians)'를 형성하고, 아리안 조항을 받아들여 유대인 혈통의 목회자를 추방하는 등 나치 이데올로기와 신앙을 혼합하는 배교의 길을 걸었다.
이에 맞서, 본회퍼는 칼 바르트(Karl Barth),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와 같은 신학자들과 함께, 교회의 유일한 주인은 국가나 총통(Führer)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선포하는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을 기초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 운동을 주도했다. 고백교회는 나치에 저항하는 소수의 양심적인 교회들의 연합체였다.
본회퍼는 미국에서의 안전한 교수직 제안을 거부하고, "이 어려운 시기에 독일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 후 독일의 기독교 재건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며 1939년 독일로 돌아왔다. 그는 고백교회의 불법적인 지하 신학교를 이끌며, 히틀러의 광기에 맞서 싸울 다음 세대의 젊은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위험한 사역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본론 2: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 제자도의 대가
본회퍼의 투쟁의 신학적 기초는, 그의 주저 『나를 따르라(Nachfolge, 영어 제목 The Cost of Discipleship)』(1937)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당시 독일 교회를 마비시킨 가장 치명적인 독이 바로 '값싼 은혜(cheap grace)'라고 진단했다.
값싼 은혜: 이것은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세례, 십자가 없는 성찬, 고백 없는 사죄를 말한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구체적인 삶의 순종과 대가 지불 없이, 단지 교리적으로만 은혜를 믿는다고 말하는 '지적인 동의'에 불과하다. 값싼 은혜는 죄를 덮어주고 정당화할 뿐, 죄인을 죄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
값비싼 은혜(costly grace): 이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이 보화를 얻기 위해 사람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파는 것처럼, 값비싼 은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며, 그 부르심을 위해 우리의 삶 전체를 요구한다. 그것은 죄인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의 길에서 돌이켜 순종의 길을 걷도록 만든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받고, 세상의 불의에 맞서며,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은혜인 이유는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본회퍼에게, 나치에 야합했던 독일 교회는 바로 이 '값싼 은혜'에 중독되어,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며 제자로서의 대가를 지불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본론 3: 히틀러 암살 계획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고백교회의 저항마저도 게슈타포의 탄압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본회퍼는 더욱 급진적인 행동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신학자의 고뇌와 정치적 저항
1940년, 그는 매형이었던 한스 폰 도나니(Hans von Dohnanyi)를 통해, 히틀러를 제거하고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비밀 저항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독일 국방군 정보부(Abwehr)의 요원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해외 인맥을 이용해 연합국과 비밀리에 접촉하는 등 암살 계획에 깊이 가담했다.
살인을 금하는 기독교 윤리와 독재자를 암살해야 한다는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그는 깊이 고뇌했다. 그러나 그는 "광인이 모는 차가 길거리를 질주할 때, 목사의 임무는 단지 그 차에 치인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뿐만 아니라, 달려들어 그 차의 운전대를 빼앗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손을 깨끗하게 지키는 '개인적 경건'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악에 맞서 책임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의무라고 믿었다.
감옥에서의 성찰과 순교
1943년 4월, 그는 마침내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감옥에서의 마지막 2년은 그의 신학이 가장 깊고 성숙하게 무르익은 시기였다. 그는 감옥에서 쓴 편지와 단상들을 통해 '성숙한 세계(world come of age)'와 '비종교적 기독교'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더 이상 종교적인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성숙한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담장 안에 갇혀 '종교'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the man for others)'이셨던 예수처럼, 세상의 고통 한복판에서 이웃과 함께 고난받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1945년 4월 9일,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기 불과 며칠 전, 히틀러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해 그는 플로센뷔르크(Flossenbürg) 강제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수용소 의사는 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그토록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죽음을 맞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론: 끝나지 않은 질문, 살아있는 제자도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라는 거대한 악의 그림자 아래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보여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순교자이자 신학자이다.
그의 유산은 다층적이고 강력하다.
그는 '고백하는 신앙'의 본질을 일깨웠다. 그는 교회가 세상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순종하며 시대의 불의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예언자적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상기시켰다.
그는 '값싼 은혜'에 대한 영원한 경고를 남겼다. 그의 삶과 신학은 오늘날 안락함과 번영에 안주하려는 모든 교회를 향해, '제자도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서슬 퍼런 도전으로 남아 있다.
그는 '세상 속의 기독교'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옥중서신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게토'가 아니라, 세상의 고통에 동참하고 책임적으로 행동하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본회퍼의 삶은 미완성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살아생전 히틀러 정권의 몰락을 보지 못했고, 그가 꿈꾸었던 교회의 갱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은, 실패처럼 보이는 고난과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의 생명이 시작된다는 십자가의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증거한다. 그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은혜는 값싼 은혜인가, 값비싼 은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