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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8.’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의 오용: 비즈니스 협상에서 지혜롭게 거절하고 요구하는 법

'무조건 양보하고 져주는 것'을 크리스천의 미덕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비즈니스 관계를 망치고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잘못된 적용입니다. 예수님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부당한 요구는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제 8: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의 오용: 비즈니스 협상에서 지혜롭게 거절하고 요구하는 법

Topic 8: Misuse of 'Turning the Other Cheek': How to Wisely Refuse and Demand in Business Negotiations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서론: '착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족쇄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크리스천의 마음속에는 종종 두 명의 자아가 치열하게 싸웁니다. 한 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과 온유를 실천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경건한 신앙인'의 자아입니다. 다른 한 명은 "회사의 이익을 지키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외치는 '현실적인 경영인'의 자아입니다. 특히 상대방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부당한 계약 조건을 내밀 때, 이 내적 갈등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며,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우리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을 마치 믿음 없는 행위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이러한 '착한 크리스천' 콤플렉스는 많은 신앙인들을 비즈니스 현장에서 무기력한 '호구'로 전락시키는 족쇄가 되곤 합니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사랑의 실천'으로, 부당함에 침묵하는 것을 '인내의 미덕'으로 오해하며, 결국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태롭게 만들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됩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가 비즈니스 세계에서까지 순진하고 무력한 양이 되기를 원하셨을까요?

이 글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고, 그것이 비즈니스 협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오용되고 있는지를 파헤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우리에게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이 두 가지 덕목의 균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거절하고, 탐욕이 아닌 정의에 근거하여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착한 호구'의 족쇄에서 풀어주어, '지혜롭고 신실한 협상가'로 거듭나게 하는 영적 해방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딜레마에 빠지는가?
'뺨을 돌려대는' 식의 수동적 태도와 비즈니스에서의 '자기주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문제는 특정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일수록 이 딜레마의 무게를 더 크게 느낍니다.

첫째,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프리랜서나 소규모 사업가들이 이 문제로 깊이 고뇌합니다. 이들은 고객과의 좋은 관계가 곧 비즈니스의 생명줄이라고 믿기 때문에, 고객의 무리한 요구(잦은 수정 요청, 계약에 없던 과업 추가, 대금 지급 지연 등)를 쉽게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번 한 번만 참으면 다음에는 더 큰 계약을 주겠지"라는 기대로 부당함을 감수하거나, "크리스천으로서 너무 까다롭게 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악덕 고객에게 계속해서 이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자신은 번아웃에 빠지며, 사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둘째, 조직 내에서 평화를 중시하는 직원과 중간관리자들 역시 이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부당한 업무 지시나 비현실적인 실적 압박을 받았을 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모든 짐을 떠안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또한, 팀원들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팀장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다 양쪽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어설픈 화해를 종용하거나 원칙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갈등 회피형' 태도는 단기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싹을 키우고 조직 전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집니다.

셋째, 선한 의도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나 비영리 단체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나 후원자들에게 사업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정당한 운영비를 요구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우리는 돈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쉬쉬하며 불안정한 운영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선한 사역의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딜레마는 '거절'과 '요구'라는 행위 자체를 비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신앙인일수록,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을 자신의 수동적인 태도를 정당화하는 '영적인 방패막이'로 오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What (무엇이) 말씀 오용의 핵심인가? - '개인적 모욕'과 '비즈니스 계약'의 차이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마 5:39)는 말씀을 비즈니스 협상에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말씀의 본래 '문맥'과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씀의 본래 문맥: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선언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해보복법(Lex Talionis)이 만연했던 사회였습니다. 이 법의 본래 목적은 과도한 보복을 막고 공정한 정의를 세우는 것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하고 있었습니다.

'오른뺨을 맞는 행위'의 의미: 당시 문화에서 오른손잡이가 상대방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등으로 치는 행위로, 단순한 폭행을 넘어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극심한 모욕'과 '멸시'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개인적인 모욕과 경멸의 상황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함으로써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에 동참하지 말라는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나는 당신의 폭력적인 방식에 굴복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과 다른, 더 높은 차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비폭력 저항의 표현이었습니다. 즉, 이는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행위입니다.

잘못된 적용: '개인적 모욕'과 '비즈니스 계약'의 혼동

문제는 이 '개인적 관계에서의 모욕과 복수'에 대한 가르침을, '상호 합의와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그 성격과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관계의 성격: 개인적 관계는 '은혜와 사랑'이 우선되는 비공식적 관계입니다. 반면, 비즈니스 관계는 '정의와 공정성'이 우선되는 공식적, 계약적 관계입니다.

쟁점의 본질: 뺨을 맞는 것은 나의 '인격과 존엄성'에 대한 부당한 공격입니다. 반면, 협상에서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것은 나의 '이익과 권리'에 대한 도전입니다.

대응의 목적: 개인적 모욕에 대한 대응 목적은 '관계의 회복'과 '악의 순환을 끊는 것'입니다. 반면, 비즈니스 협상에서의 대응 목적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객이 계약에 없는 추가 업무를 요구하는 것은 나의 뺨을 때리는 개인적인 모욕이 아니라, 계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당한 요구'입니다. 이때 "사랑으로 다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계약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해가 됩니다.

진정한 성경적 원칙: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의 조화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순진한 양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리 떼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남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동시에 갖추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10:16).

뱀 같은 지혜 (Serpent's Wisdom): 이는 상황을 명철하게 판단하고,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전략적 사고'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며,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바로 뱀의 지혜입니다.

비둘기 같은 순결 (Dove's Innocence): 이는 협상의 과정에서 정직과 성실의 원칙을 지키고, 상대를 속이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선한 동기를 유지하는 '도덕적 순수성'을 의미합니다.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 협상가는 바로 이 두 날개로 나는 사람입니다. 뺨을 돌려대는 무기력한 양도, 상대를 물어뜯는 교활한 이리도 아닌, '지혜롭고 순결한' 청지기로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입니다.

3. When (언제) '착한 크리스천'의 가면을 벗어야 하는가?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 원칙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뺨을 돌려대는' 수동적 태도를 버리고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분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정성의 원칙'이 깨어질 때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비즈니스는 상호 간의 공정한 가치 교환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제공하는 가치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는 개인적인 실수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근간을 흔드는 '불의'의 문제입니다. 잠언 11장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탐욕이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에 '공의'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거절해야 합니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계속 들어주다가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어려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주는 '무책임한 경영'입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아부어 번아웃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건강과 재능이라는 자원을 관리하지 못한 '청지기의 실패'입니다. 나의 비즈니스와 나의 삶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경계선을 설정하고, 그 선을 넘는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상대방의 악한 행동'을 조장하게 될 때 우리는 관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내가 부당한 요구를 계속 수용해주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이렇게 막 대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나의 '인내'는 상대방이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방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그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거래를 중단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성이 깨지고,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며, 상대의 악을 조장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착한 크리스천'의 가면을 벗고, '지혜롭고 순결한' 협상가로서 용기를 내야 할 때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비즈니스에서의 수동성은 학습되는가?
많은 크리스천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독 유약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데에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문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합니다.

첫 번째 원천은 '오해된 겸손'을 가르치는 교회 문화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겸손'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순종하며, 자신을 낮추는 소극적인 태도와 동일시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은 '교만하다'거나 '믿음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고, 갈등을 피하며, 무조건적인 양보와 희생을 '성숙한 신앙'의 증거로 여기게 됩니다. 물론 겸손은 중요한 기독교적 덕목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이지 '사람 앞에서의 비굴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왜곡된 겸손의 가르침은 성도들의 건강한 자아상을 훼손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정당한 자기주장 능력마저 거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정의'보다 '화평'을 절대시하는 관계 중심적 문화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다투지 말고 화평하라"는 가르침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만, '정의가 배제된 화평'을 추구할 때 문제가 됩니다. 불의한 상황에 눈감고,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겉으로만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은 '값싼 평화'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말씀하시며, 때로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 거짓된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 공동체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원칙을 바로 세우려는 사람을 '평화를 깨는 분란 유발자'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신앙인들이 부당한 비즈니스 관행에 대해 침묵하게 만들고, 불의와 타협하게 하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 원천은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부정적이고 이원론적인 시각' 입니다. 비즈니스 세계 자체를 탐욕과 속임수가 판치는 '더러운 세상'으로 규정하고, 그곳에서 성공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세속적인 욕심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진 신앙인들은 비즈니스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차피 세상적인 일인데, 조금 손해 보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쉽게 양보하고, 협상 기술을 배우거나 전략을 세우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폄하합니다. 이는 결국 비즈니스라는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내어주는 심각한 이원론적 오류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겸손, 값싼 화평,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한 문화 속에서, 신앙인들은 지혜롭게 거절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신앙의 이름으로 내면화하게 됩니다.

5. Why (왜) 우리는 '지혜로운 뱀'이 되기를 두려워하는가?
성경이 '뱀 같은 지혜'를 명백히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순결한 비둘기'의 모습에만 머무르려 하고, 지혜로운 협상가가 되기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 심층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절에 대한 두려움(Fear of Rejection)' 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나의 권리를 주장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이기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비즈니스 기회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갈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당함을 인정받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부당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와 교만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며, 전략적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다룬 '기도만능주의'의 함정과도 연결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 준비 없이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성과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성실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셋째, '지혜를 가장한 탐욕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뱀 같은 지혜'를 발휘하는 과정에서, 자칫 선을 넘어 상대를 속이거나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자기 불신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건강한 영적 경계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지혜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마치 운전하다가 사고 낼 것이 두려워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해결책은 지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순결'이라는 강력한 브레이크를 함께 장착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동기가 탐욕이 아닌 '공의'에 기반하고 있는지, 나의 방법이 '정직'의 선을 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점검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혜로운 뱀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교만이라는 오해, 그리고 탐욕에 빠질지 모른다는 자기 불신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사람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찾고, 성실한 준비를 청지기의 의무로 받아들이며, 순결한 동기를 유지하려는 영적 훈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6. How (어떻게) '지혜와 순결'을 겸비한 협상가가 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추상적인 원칙을 넘어, 비즈니스 협상 현장에서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과 행동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협상 전 - '뱀의 지혜'로 철저히 준비하라

전쟁에 나가는 장수처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의 깊이가 협상의 결과를 결정합니다.

1. 가치(Value)를 객관화하라: 내가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 노동의 가치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인지 철저히 조사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준비합니다.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가 협상의 힘이 됩니다.

2. 마지노선(BATNA)을 설정하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최선의 대안(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을 미리 정해 둡니다. 이것이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됩니다. 이 선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며 불리한 조건에 합의하게 됩니다.

3. 경계선(Boundary)을 명확히 하라: 계약서에 업무의 범위(Scope of Work), 기간, 비용, 수정 횟수 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모호한 경계선은 나중에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4. 상대방을 연구하라: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제약 조건은 무엇인지 미리 파악합니다. 상대의 필요를 이해할 때, 창의적인 '윈윈(Win-Win)'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 2: 협상 중 - '비둘기의 순결'로 정직하게 소통하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협상 과정에서는 순결하고 정직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1.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여 논의합니다. "부장님은 너무 부당합니다"가 아니라, "그 조건은 저희가 수용하기 어려운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긍정적인 언어로 거절하라 (Art of Refusal):

'No, because...' 기법: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처럼,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객관적인 이유를 간결하게 덧붙입니다.

'Yes, if...' 기법: "네, 그 요청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산과 일정을 조정한다면..."처럼, 상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거절을 긍정적인 대안 제시로 전환합니다.

3. 공의에 기반하여 요구하라 (Art of Demanding): 나의 요구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공정성', '상호 이익', '업계 표준'과 같은 객관적인 정의의 기준에 부합함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이만큼 받아야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공정한 시장 가격은 이 정도 수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방향 제시: '거래'를 넘어 '관계'를 세우는 협상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단기적인 이익을 뺏어오는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플러스섬 게임'의 설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협상가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이번 계약을 잘 따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협상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의 '신실함'과 '공정함'을 경험하게 하고, "이 사람과는 믿고 함께 일할 수 있겠다"는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때로는 단기적인 이익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얻는 것이 더 큰 지혜일 수 있습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은 비즈니스에서의 무능을 정당화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수와 탐욕이라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지혜'와 '순결'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원리로 비즈니스 세계를 변화시키라는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의 협상 테이블은 더 이상 싸움의 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거룩한 선교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주제 8: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의 오용: 비즈니스 협상에서 지혜롭게 거절하고 요구하는 법

Topic 8: Misuse of 'Turning the Other Cheek': How to Wisely Refuse and Demand in Business Negotiations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서론: '착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족쇄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크리스천의 마음속에는 종종 두 명의 자아가 치열하게 싸웁니다. 한 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과 온유를 실천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경건한 신앙인'의 자아입니다. 다른 한 명은 "회사의 이익을 지키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외치는 '현실적인 경영인'의 자아입니다. 특히 상대방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부당한 계약 조건을 내밀 때, 이 내적 갈등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며,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우리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을 마치 믿음 없는 행위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이러한 '착한 크리스천' 콤플렉스는 많은 신앙인들을 비즈니스 현장에서 무기력한 '호구'로 전락시키는 족쇄가 되곤 합니다.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사랑의 실천'으로, 부당함에 침묵하는 것을 '인내의 미덕'으로 오해하며, 결국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태롭게 만들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됩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가 비즈니스 세계에서까지 순진하고 무력한 양이 되기를 원하셨을까요?

이 글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고, 그것이 비즈니스 협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오용되고 있는지를 파헤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의 틀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결코 우리에게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이 두 가지 덕목의 균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거절하고, 탐욕이 아닌 정의에 근거하여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착한 호구'의 족쇄에서 풀어주어, '지혜롭고 신실한 협상가'로 거듭나게 하는 영적 해방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딜레마에 빠지는가?
'뺨을 돌려대는' 식의 수동적 태도와 비즈니스에서의 '자기주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문제는 특정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일수록 이 딜레마의 무게를 더 크게 느낍니다.

첫째,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프리랜서나 소규모 사업가들이 이 문제로 깊이 고뇌합니다. 이들은 고객과의 좋은 관계가 곧 비즈니스의 생명줄이라고 믿기 때문에, 고객의 무리한 요구(잦은 수정 요청, 계약에 없던 과업 추가, 대금 지급 지연 등)를 쉽게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번 한 번만 참으면 다음에는 더 큰 계약을 주겠지"라는 기대로 부당함을 감수하거나, "크리스천으로서 너무 까다롭게 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악덕 고객에게 계속해서 이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자신은 번아웃에 빠지며, 사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둘째, 조직 내에서 평화를 중시하는 직원과 중간관리자들 역시 이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부당한 업무 지시나 비현실적인 실적 압박을 받았을 때,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모든 짐을 떠안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또한, 팀원들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팀장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다 양쪽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어설픈 화해를 종용하거나 원칙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갈등 회피형' 태도는 단기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싹을 키우고 조직 전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집니다.

셋째, 선한 의도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나 비영리 단체 운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나 후원자들에게 사업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정당한 운영비를 요구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우리는 돈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쉬쉬하며 불안정한 운영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선한 사역의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딜레마는 '거절'과 '요구'라는 행위 자체를 비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신앙인일수록,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을 자신의 수동적인 태도를 정당화하는 '영적인 방패막이'로 오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What (무엇이) 말씀 오용의 핵심인가? - '개인적 모욕'과 '비즈니스 계약'의 차이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마 5:39)는 말씀을 비즈니스 협상에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말씀의 본래 '문맥'과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말씀의 본래 문맥: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선언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해보복법(Lex Talionis)이 만연했던 사회였습니다. 이 법의 본래 목적은 과도한 보복을 막고 공정한 정의를 세우는 것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하고 있었습니다.

'오른뺨을 맞는 행위'의 의미: 당시 문화에서 오른손잡이가 상대방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등으로 치는 행위로, 단순한 폭행을 넘어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극심한 모욕'과 '멸시'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개인적인 모욕과 경멸의 상황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함으로써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에 동참하지 말라는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나는 당신의 폭력적인 방식에 굴복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과 다른, 더 높은 차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비폭력 저항의 표현이었습니다. 즉, 이는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행위입니다.

잘못된 적용: '개인적 모욕'과 '비즈니스 계약'의 혼동

문제는 이 '개인적 관계에서의 모욕과 복수'에 대한 가르침을, '상호 합의와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그 성격과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관계의 성격: 개인적 관계는 '은혜와 사랑'이 우선되는 비공식적 관계입니다. 반면, 비즈니스 관계는 '정의와 공정성'이 우선되는 공식적, 계약적 관계입니다.

쟁점의 본질: 뺨을 맞는 것은 나의 '인격과 존엄성'에 대한 부당한 공격입니다. 반면, 협상에서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것은 나의 '이익과 권리'에 대한 도전입니다.

대응의 목적: 개인적 모욕에 대한 대응 목적은 '관계의 회복'과 '악의 순환을 끊는 것'입니다. 반면, 비즈니스 협상에서의 대응 목적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객이 계약에 없는 추가 업무를 요구하는 것은 나의 뺨을 때리는 개인적인 모욕이 아니라, 계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당한 요구'입니다. 이때 "사랑으로 다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계약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해가 됩니다.

진정한 성경적 원칙: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의 조화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순진한 양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리 떼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남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동시에 갖추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10:16).

뱀 같은 지혜 (Serpent's Wisdom): 이는 상황을 명철하게 판단하고,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전략적 사고'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며,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바로 뱀의 지혜입니다.

비둘기 같은 순결 (Dove's Innocence): 이는 협상의 과정에서 정직과 성실의 원칙을 지키고, 상대를 속이거나 비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선한 동기를 유지하는 '도덕적 순수성'을 의미합니다.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 협상가는 바로 이 두 날개로 나는 사람입니다. 뺨을 돌려대는 무기력한 양도, 상대를 물어뜯는 교활한 이리도 아닌, '지혜롭고 순결한' 청지기로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입니다.

3. When (언제) '착한 크리스천'의 가면을 벗어야 하는가?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 원칙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뺨을 돌려대는' 수동적 태도를 버리고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분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공정성의 원칙'이 깨어질 때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비즈니스는 상호 간의 공정한 가치 교환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제공하는 가치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는 개인적인 실수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근간을 흔드는 '불의'의 문제입니다. 잠언 11장 1절은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탐욕이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에 '공의'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거절해야 합니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계속 들어주다가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되어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어려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주는 '무책임한 경영'입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아부어 번아웃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헌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건강과 재능이라는 자원을 관리하지 못한 '청지기의 실패'입니다. 나의 비즈니스와 나의 삶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경계선을 설정하고, 그 선을 넘는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상대방의 악한 행동'을 조장하게 될 때 우리는 관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내가 부당한 요구를 계속 수용해주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이렇게 막 대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나의 '인내'는 상대방이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돕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방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그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거래를 중단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성이 깨지고,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으며, 상대의 악을 조장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착한 크리스천'의 가면을 벗고, '지혜롭고 순결한' 협상가로서 용기를 내야 할 때입니다.

4. Where (어디에서) 비즈니스에서의 수동성은 학습되는가?
많은 크리스천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독 유약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데에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문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합니다.

첫 번째 원천은 '오해된 겸손'을 가르치는 교회 문화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겸손'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고, 조용히 순종하며, 자신을 낮추는 소극적인 태도와 동일시됩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은 '교만하다'거나 '믿음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고, 갈등을 피하며, 무조건적인 양보와 희생을 '성숙한 신앙'의 증거로 여기게 됩니다. 물론 겸손은 중요한 기독교적 덕목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인식'이지 '사람 앞에서의 비굴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왜곡된 겸손의 가르침은 성도들의 건강한 자아상을 훼손하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정당한 자기주장 능력마저 거세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정의'보다 '화평'을 절대시하는 관계 중심적 문화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다투지 말고 화평하라"는 가르침은 그 자체로는 선하지만, '정의가 배제된 화평'을 추구할 때 문제가 됩니다. 불의한 상황에 눈감고,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겉으로만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은 '값싼 평화'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고 말씀하시며, 때로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 거짓된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 공동체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원칙을 바로 세우려는 사람을 '평화를 깨는 분란 유발자'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신앙인들이 부당한 비즈니스 관행에 대해 침묵하게 만들고, 불의와 타협하게 하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 원천은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부정적이고 이원론적인 시각' 입니다. 비즈니스 세계 자체를 탐욕과 속임수가 판치는 '더러운 세상'으로 규정하고, 그곳에서 성공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세속적인 욕심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을 가진 신앙인들은 비즈니스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차피 세상적인 일인데, 조금 손해 보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쉽게 양보하고, 협상 기술을 배우거나 전략을 세우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폄하합니다. 이는 결국 비즈니스라는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내어주는 심각한 이원론적 오류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겸손, 값싼 화평,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한 문화 속에서, 신앙인들은 지혜롭게 거절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신앙의 이름으로 내면화하게 됩니다.

5. Why (왜) 우리는 '지혜로운 뱀'이 되기를 두려워하는가?
성경이 '뱀 같은 지혜'를 명백히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순결한 비둘기'의 모습에만 머무르려 하고, 지혜로운 협상가가 되기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 심층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거절에 대한 두려움(Fear of Rejection)' 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나의 권리를 주장했을 때, 상대방이 나를 '이기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비즈니스 기회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갈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당함을 인정받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부당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와 교만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며, 전략적으로 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다룬 '기도만능주의'의 함정과도 연결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아무 준비 없이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성과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여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는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성실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셋째, '지혜를 가장한 탐욕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뱀 같은 지혜'를 발휘하는 과정에서, 자칫 선을 넘어 상대를 속이거나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자기 불신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건강한 영적 경계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지혜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마치 운전하다가 사고 낼 것이 두려워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해결책은 지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 같은 순결'이라는 강력한 브레이크를 함께 장착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동기가 탐욕이 아닌 '공의'에 기반하고 있는지, 나의 방법이 '정직'의 선을 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점검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혜로운 뱀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교만이라는 오해, 그리고 탐욕에 빠질지 모른다는 자기 불신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사람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찾고, 성실한 준비를 청지기의 의무로 받아들이며, 순결한 동기를 유지하려는 영적 훈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6. How (어떻게) '지혜와 순결'을 겸비한 협상가가 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추상적인 원칙을 넘어, 비즈니스 협상 현장에서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과 행동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협상 전 - '뱀의 지혜'로 철저히 준비하라

전쟁에 나가는 장수처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의 깊이가 협상의 결과를 결정합니다.

1. 가치(Value)를 객관화하라: 내가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 노동의 가치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인지 철저히 조사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준비합니다.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가 협상의 힘이 됩니다.

2. 마지노선(BATNA)을 설정하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최선의 대안(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을 미리 정해 둡니다. 이것이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됩니다. 이 선이 없으면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며 불리한 조건에 합의하게 됩니다.

3. 경계선(Boundary)을 명확히 하라: 계약서에 업무의 범위(Scope of Work), 기간, 비용, 수정 횟수 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모호한 경계선은 나중에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4. 상대방을 연구하라: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제약 조건은 무엇인지 미리 파악합니다. 상대의 필요를 이해할 때, 창의적인 '윈윈(Win-Win)'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 2: 협상 중 - '비둘기의 순결'로 정직하게 소통하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협상 과정에서는 순결하고 정직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1.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라: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여 논의합니다. "부장님은 너무 부당합니다"가 아니라, "그 조건은 저희가 수용하기 어려운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긍정적인 언어로 거절하라 (Art of Refusal):

'No, because...' 기법: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처럼,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객관적인 이유를 간결하게 덧붙입니다.

'Yes, if...' 기법: "네, 그 요청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산과 일정을 조정한다면..."처럼, 상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거절을 긍정적인 대안 제시로 전환합니다.

3. 공의에 기반하여 요구하라 (Art of Demanding): 나의 요구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공정성', '상호 이익', '업계 표준'과 같은 객관적인 정의의 기준에 부합함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이만큼 받아야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공정한 시장 가격은 이 정도 수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방향 제시: '거래'를 넘어 '관계'를 세우는 협상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단기적인 이익을 뺏어오는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플러스섬 게임'의 설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협상가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이번 계약을 잘 따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협상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의 '신실함'과 '공정함'을 경험하게 하고, "이 사람과는 믿고 함께 일할 수 있겠다"는 신뢰를 얻는 것입니다. 때로는 단기적인 이익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얻는 것이 더 큰 지혜일 수 있습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은 비즈니스에서의 무능을 정당화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수와 탐욕이라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지혜'와 '순결'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원리로 비즈니스 세계를 변화시키라는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의 협상 테이블은 더 이상 싸움의 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거룩한 선교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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