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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실패에 대한 오해: 실패는 하나님의 징계인가, 아니면 연단의 과정인가?
크리스천 사업가들은 실패를 '믿음이 부족해서 받은 징계'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신호'로 속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 대부분은 뼈아픈 실패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실패는 우리의 교만을 꺾고,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연단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더 지혜로워졌는지가 중요합니다.

주제 5: 실패에 대한 오해: 실패는 하나님의 징계인가, 아니면 연단의 과정인가?
Topic 5: Misunderstanding Failure: Is Failure God's Punishment, or a Process of Refinement?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서론: 실패라는 이름의 붉은 낙인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사업이 문을 닫고, 간절히 원했던 승진에서 탈락하며, 굳게 믿었던 인간관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우리는 '실패'라는 차가운 단어와 마주하게 됩니다. 세상은 실패를 무능의 증거이자 낙오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신앙인에게 실패는 훨씬 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바로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이면에는 실패를 하나님의 뜻과 연결 지으려는 신앙적인 몸부림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부림은 종종 두 가지 극단적인 해석으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실패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죄나 믿음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자책하며 깊은 죄책감과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다른 하나는 실패를 무조건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애써 긍정하며 "이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시려는 훈련 과정일 뿐"이라고 되뇌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과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과연 실패는 하나님의 징계일까요, 아니면 우리를 성장시키는 연단의 과정일까요? 이 두 가지 해석만이 유일한 답일까요? 이 글은 신앙인들이 실패 앞에서 겪는 이러한 혼란의 근원을 파헤치고, 실패에 대한 성경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에 따라 실패라는 경험을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실패를 단순한 징계나 연단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실패라는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더 깊은 믿음과 지혜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실패가 더 이상 우리 삶을 무너뜨리는 붉은 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새기는 거룩한 조각칼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오해로 고통받는가?
실패에 대한 오해는 특정 계층이나 상황에 국한되지 않으며, 오히려 신실하게 살아가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예고 없이 찾아와 깊은 상처를 남기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첫째, 열정적인 사업가와 성실한 직장인들이 이 문제로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여기고,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의 실패나 직장에서의 좌절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하나님이 나의 소명을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나의 믿음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구나'라는 심각한 신앙적 회의감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번영신학의 영향을 받은 경우, 실패는 곧 믿음의 파산 선고처럼 느껴져 자신의 신앙 정체성 전체를 뒤흔드는 깊은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둘째, 중요한 시험이나 도전을 앞둔 학생과 청년들 역시 이 오해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원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거나, 오랫동안 준비해온 고시에 낙방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감을 넘어 영적인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내가 더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실 계획이 없으신가 봐" 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무력감에 빠집니다. 이는 실패라는 인생의 한 과정을 통과하며 더 단단해질 기회를 박탈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에 대한 불신을 싹트게 하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셋째, 선한 의도를 가진 사역자와 봉사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성도들이 모이지 않아 문을 닫게 된 목회자, 선교지에서 사역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고 철수하게 된 선교사,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교회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험을 한 평신도 리더. 이들은 자신의 헌신과 노력이 아무런 열매 없이 끝났다는 사실 앞에서 깊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들의 실패는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왜 실패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며, 때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실패에 대한 오해는 믿음이 약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실패를 하나님과 연결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더 깊은 고통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는 '고난'의 의미에 대한 건강한 신학적 토대가 부재할 때, 모든 신앙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영적 성장통입니다.
2. What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 징계, 연단, 그리고 일반적 실패의 차이
우리가 실패 앞에서 혼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나타난 여러 종류의 고난을 하나의 잣대로만 해석하려는 '단순화의 오류' 때문입니다. 실패의 원인과 목적은 다양하며, 이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징계 (Discipline / Chastisement)
이는 '알려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입니다. 목적은 우리를 벌하여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회복시키려는 '교정(Correction)'에 있습니다.
원인: 명백하고 지속적인 불순종, 회개하지 않는 교만, 우상숭배 등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구체적인 죄'와 연결됩니다. (예: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살해한 죄에 대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징계를 선포하신 사건)
목적: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말하며, 징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임을 강조합니다.
특징: 종종 죄와 결과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가 드러납니다. 양심의 가책과 성령의 탄식을 동반하며, 회개할 때 용서와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2. 연단 (Refinement / Training)
이는 우리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하고 인격을 성숙시키기 위한 '훈련 과정'입니다. 용광로에서 금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듯,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만드십니다.
원인: 특정한 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뿌리를 둡니다. (예: 욥이 까닭 없이 겪었던 극심한 고난)
목적: 우리의 믿음에 섞인 불순물(자기 의, 세상 의존, 교만 등)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순수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와 소망과 같은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게 합니다. (로마서 5:3-4)
특징: 고난의 이유를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되고, 이전에는 몰랐던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3. 일반적 실패 (Common Failure)
이는 죄로 인해 망가진 세상(Fallen World)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모든 실패에 특별한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원인: 나의 미숙한 판단, 부족한 준비,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변화, 타인의 실수나 죄, 자연재해 등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예: 예수님이 말씀하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의 사건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목적: 하나님은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지혜'와 '겸손'을 가르치십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하고, 세상을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하며, 다음 도전을 위한 실질적인 교훈을 얻게 하십니다.
특징: 실패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학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책임을 하나님이나 자신의 영성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성장을 방해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세 가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모든 실패를 '징계'로만 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것은 나의 전략 부족(일반적 실패)일 수 있는데, 그것을 숨겨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징계)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우리는 불필요한 죄책감에 빠지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실패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성급하게 결론 내리기보다 이 세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기도하며 분별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합니다.
3. When (언제) 실패에 대한 오해는 극대화되는가?
실패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우리 삶의 특정 고비마다 더욱 우리를 괴롭히며 신앙의 근간을 흔들어 놓습니다.
첫째,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 우리의 혼란은 극에 달합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특별 새벽 기도까지 하며 매달렸지만 결과가 처참할 때, 자녀의 합격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께 배신당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내 기도가 부족했나? 아니면 내 정성이 부족했나?"라는 자책을 넘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신가?"라는 근본적인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기도를 '성공을 보장하는 주문'처럼 생각하는 기복적인 신앙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며, 실패를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이라는 더 큰 틀에서 이해하지 못할 때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둘째,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게 될 때' 실패의 고통은 배가됩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동료는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실패했을 때, 신앙이 없어 보이는 경쟁사는 번창하는데 정직하게 경영하려던 내 회사는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시편 73편의 기자처럼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탄식하게 됩니다. "성실하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러한 비교 의식은 실패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교훈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타인에 대한 시기심이라는 죄에 빠지게 만드는 사탄의 강력한 통로가 됩니다.
셋째, '실패가 반복되거나 장기화될 때' 우리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집니다. 한 번의 실패는 연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여러 번의 시도가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가면 더 이상 소망을 품기 어려워집니다.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인가 봐",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는 부정적인 자기 인식이 고착화됩니다. 이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로 이어져,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용기마저 잃게 만듭니다. 반복되는 실패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로마서 5장의 말씀처럼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의 선순환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환난 → 불평 → 원망 → 절망'의 악순환에 갇힐 것인지를 결정하는 영적인 분수령이 됩니다.
이처럼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가 우리의 영적 상태를 결정합니다. 특히 기도가 외면당하고, 타인과 비교되며, 실패가 반복되는 고통의 순간에, 우리는 감정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견고한 신학적 토대와 성숙한 믿음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러한 오해는 싹트고 자라나는가?
실패를 징계와 동일시하는 잘못된 생각은 개인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생겨나기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암암리에 학습되고 강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온상은 '인과응보 논리가 강한 교회 문화' 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종종 "아무개 집사님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걸 보니, 십일조 생활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가 봐", "저 청년이 계속 취업에 실패하는 건, 주일 성수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야?"와 같은 섣부른 판단과 정죄의 말을 듣게 됩니다. 이는 욥의 친구들이 욥의 고난을 그의 숨겨진 죄 탓으로 돌렸던 것과 똑같은 오류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실패로 고통받는 이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깊은 죄책감과 상처를 안겨줍니다. 또한, 성공한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 "내가 이렇게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이런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라는 식의 간증이 필터링 없이 공유될 때, 듣는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순종 = 성공', '불순종 = 실패'라는 단순한 공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두 번째 온상은 '과도한 긍정주의를 강요하는 신앙 분위기' 입니다. 실패와 고난의 아픔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을 '믿음 없는 불평'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슬픔, 분노, 의심과 같은 정직한 감정을 억누르고 '경건한 신앙인'처럼 보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위선적인 신앙을 낳을 뿐입니다. 시편의 기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고통과 원망을 쏟아냈던 것처럼, 공동체는 실패한 지체들이 자신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섣부른 위로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당사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홀로 고통을 짊어지게 만듭니다.
세 번째 온상은 '세상의 성공주의 가치관이 스며든 교회' 입니다. 교회마저도 세상처럼 크고, 많고, 유명해지는 것을 '부흥'과 '성공'의 척도로 삼게 될 때, 실패는 자연스럽게 감추고 싶은 수치가 됩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성공한 사람들을 내세우고, 실패한 사람들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실패를 공동체에 나누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패는 곧 신앙의 실패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는 성공한 자들의 자랑과 교제가 넘치는 곳이 되고, 실패하고 상처 입은 자들이 설 곳을 잃어버리는 역설적인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모든 죄인들을 품으셨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실패에 대한 개인의 오해는 공동체의 건강하지 못한 문화 속에서 싹트고 자라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앙적 성숙과 더불어, 공동체가 실패를 어떻게 다루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5. Why (왜) 우리는 실패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속단하는가?
복잡한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의 징계'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속단해 버리는 경향 뒤에는, 우리의 깊은 심리적, 신학적 연약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째, '통제에 대한 욕구'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큰 불안을 느낍니다. 실패를 "내가 알지 못하는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이유'를 부여함으로써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입니다. "내가 그 죄만 해결하면 이 실패가 끝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즉, 실패를 징계로 해석하는 것은, 불확실한 고난의 상황을 어떻게든 자신이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인 셈입니다.
둘째, '율법주의적 신앙'의 잔재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은연중에 '상벌의 논리'에 기초한 율법주의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원인)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결과), 내가 불순종하면 벌을 내리신다는 단순한 인과응보적 신앙입니다. 물론 성경에 그러한 원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러한 율법적 관계에서 은혜의 관계로 옮겨 놓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얻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은혜의 자리에서 율법의 자리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실패 앞에서 즉각적으로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묻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보다는 나의 행위와 자격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보다는, 우리의 잘못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있다가 실수를 하면 즉각적으로 벌을 내리시는 '두려운 재판관'이나 '엄격한 경찰관'의 이미지로 하나님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이미지는 우리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권위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나에게 화가 나셨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을 묻지 않고 달려가 품에 안아주셨던 아버지의 모습(누가복음 15장)이야말로, 실패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임을 회복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실패를 징계라고 속단하는 우리의 성급함 뒤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어 하는 연약함, 은혜보다는 행위를 앞세우는 율법주의, 그리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왜곡된 신앙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이 뿌리 깊은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실패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6. How (어떻게) 실패를 신앙 성장의 디딤돌로 삼을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실패를 징계나 낙인으로 여기는 오해에서 벗어나, 그것을 신앙 성숙의 결정적인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인 영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방법론 1: 실패의 '다차원적 분별(Multi-dimensional Discernment)' 프로세스
실패에 직면했을 때,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고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순서대로 자신에게 던지며 기도하는 '분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단계 (회개의 질문): "이 실패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나의 '죄'는 없었는가?" 가장 먼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업의 실패가 혹시 나의 탐욕이나 부정직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관계의 실패가 나의 교만이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만약 명백한 죄가 발견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징계'의 사인일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첫걸음입니다.
2단계 (성숙의 질문): "죄는 아니지만, 이 실패를 통해 드러난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무엇인가?" 명백한 죄는 아니더라도, 실패는 우리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거울이 됩니다. 조급함, 준비 부족, 사람에 대한 과도한 의존, 교만 등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이 실패를 통해 저의 이런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의 믿음과 인격이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를 '연단'의 기회로 삼는 태도입니다.
3.단계 (지혜의 질문): "영적인 문제를 떠나, 내가 배울 수 있는 '현실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실패를 객관적인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업 전략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나의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놓쳤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이는 '일반적 실패'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이 실패로부터 실질적인 지혜를 얻게 하시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저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방법론 2: '복음 중심적 정체성(Gospel-centered Identity)'의 확립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은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매일 자신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행위'가 아닌 '존재'로: "나는 성공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다" 또는 "나는 실패했기 때문에 무가치한 존재다"라는 세상의 논리를 거부해야 합니다. 대신 "나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다"라는 복음의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자기 선포: "나의 가치는 나의 성과에 있지 않다. 나의 가치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실패는 나의 한 부분을 설명할 뿐, 나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지 못한다"고 매일 고백하며, 실패가 주는 거짓된 정죄감과 싸워야 합니다.
방향 제시: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Sovereign Goodness of God)'에 대한 절대적 신뢰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실패의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 8:28)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징계이든, 연단이든, 일반적 실패이든,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우리를 더 온전하게 빚으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안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실패는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 위에 굳게 설 때, 실패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장 깊이 경험하게 될 놀라운 기회의 장이 될 것입니다. 실패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따뜻하고 강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