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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1.성공의 기준 착각: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정말 다른 길인가?

많은 크리스천 사업가들이 겪는 가장 근본적인 내적 갈등은 '성공'을 측정하는 두 개의 다른 저울 사이에서의 혼란입니다. 세상의 성공 척도(매출, 인지도 등)와 성경의 성공 척도(충성, 과정의 거룩함, 선한 영향력)가 완전히 다른 길이라고 생각할 때, 비즈니스는 방향을 잃고 신앙과 일이 분리됩니다. 성경적 성공은 비즈니스의 뿌리가 되어야 하며, 세상적 성공은 그 위에서 맺히는 건강한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열매를 얻기 위해 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제 1: 성공의 기준 착각: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정말 다른 길인가?

Topic 1: The Illusion of Success Standards: Are 'Worldly Success' and 'Biblical Success' Really on Different Paths?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3-24)

서론: 성공이라는 이름의 나침반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우리 모두는 손에 보이지 않는 나침반을 쥐고 있습니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방향, 그것은 바로 '성공'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갈망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녀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성공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그 나침반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고장 난 나침반을 맹신하며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맹렬히 노를 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는 '성공'에 대한 매우 명확하고 강력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더 높은 연봉, 더 넓은 집,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 사회적 지위와 명예. 미디어는 이러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삶을 화려하게 조명하고, 우리는 은연중에 그것이 유일한 성공의 모습이라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적 성공'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반면,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준이 존재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기준과는 사뭇 다른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겸손, 섬김, 사랑, 믿음,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우리는 이것을 '성경적 성공'이라 부릅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나침반이 종종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북쪽과 성경의 북쪽이 달라 보이는 혼란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은 갈등하고 방황합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경적 성공은 세상에서의 무능과 가난을 정당화하는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이 글은 바로 이 딜레마의 중심을 파고들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에 따라 '성공'이라는 개념을 입체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우리는 두 성공의 길이 정말 다른 길인지, 아니면 같은 길이지만 목적지가 다른 것인지 탐구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장 난 나침반을 수리하고, 인생이라는 항해의 진정한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과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와 깊이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가?
이 질문은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보편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회초년생과 청년들이 이 문제의 가장 전면에 서 있습니다. 이제 막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장 열정적으로 달려가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인정받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과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느낍니다. 동시에, 주일 예배에서 듣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말라'는 메시지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 야근과 주말 근무를 불사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 정말 '믿음으로 사는 것'일까? 그들의 고민은 현실과 신앙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됩니다.

둘째, 기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들 역시 이 문제로 깊이 고뇌합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이윤 극대화와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정직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유혹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 기업가로서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길을 걷고자 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인지 늘 시험에 듭니다. 이익을 포기하고 정직을 택했을 때 오는 사업적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해 달려온 나의 모든 성취가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교만은 아닐까? 그들의 어깨 위에는 자신과 직원들의 생계, 그리고 신앙적 양심이라는 무거운 짐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셋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딜레마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과정에서 갈등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도록 독려하고 지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녀가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아는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이 두 가지 바람이 충돌할 때 부모는 혼란에 빠집니다. 자녀에게 세상적 성공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신앙 교육일까? "하나님만 잘 믿으면 다 책임져 주신다"고 말하며 현실적인 준비를 소홀히 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이 아닐까?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의 인생 나침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그들의 고민은 더욱 신중하고 무겁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 사이의 갈등은 목회자나 신학자만의 신학적 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문제이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이 고민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입니다.

2. What (무엇이) '성공'인가? - 두 나침반의 본질적 차이
우리가 혼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이라는 단어 아래 두 개의 전혀 다른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개념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문제의 절반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치 소금과 설탕이 둘 다 흰색 가루이지만 그 맛과 쓰임새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외형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근원과 목적, 측정 방식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세상적 성공의 본질: '소유(Having)'와 '성취(Achieving)'

세상적 성공은 기본적으로 '소유'와 '성취'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는 외부로부터 확인 가능하고, 수치로 계량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의됩니다.

기준점: '나' 자신 또는 타인과의 '비교'입니다. 나의 성공은 타인의 성공과 비교하여 측정됩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을 때, 더 높은 위치에 올랐을 때 성공했다고 느낍니다.

목표: 부, 명예, 권력, 인기 등 외적인 가치의 '극대화'입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얻는 것이 주된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측정 방식: 통장 잔고, 직급, 아파트 평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 등 '가시적'이고 '계량적'인 지표로 측정됩니다.

결과: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지만, 동시에 더 큰 성공을 향한 갈증과 타인에 대한 시기심,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그 본질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성경적 성공의 본질: '존재(Being)'와 '관계(Relationship)'

반면, 성경적 성공은 소유나 성취가 아닌 '존재'와 '관계'에 그 뿌리를 둡니다. 이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상태, 그리고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의됩니다.

기준점: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과 그분의 성품입니다. 나의 성공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과 재능을 얼마나 신실하게 감당했는가로 측정됩니다.

목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내면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성숙'입니다. 돈과 명예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측정 방식: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온유, 절제 등 '비가시적'이고 '내면적'인 가치로 측정됩니다. 이는 세상의 저울로는 잴 수 없습니다.

결과: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평안과 기쁨을 줍니다. 환경이나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정체성을 세워주며, 그 가치는 영원합니다.

이처럼 두 성공은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세상적 성공이 '무엇을 이루었는가(What you have done)'에 초점을 맞춘다면, 성경적 성공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Who you have become)'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 사업가가 큰 부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동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를 이루는 과정이 정직했는지,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인격이 더욱 탐욕스러워졌는지 아니면 더욱 관대해졌는지에 따라 두 성공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길이 완전히 별개라고 단정하기보다, 같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어떤 나침반을 보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When (언제) 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가?
이론적으로 두 성공의 차이를 아는 것과, 삶의 현장에서 그 갈등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 내적 갈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결정적인 순간마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수면 위에 떠 오릅니다.

첫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갈등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전공을 선택할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흥미가 없는 학과'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불안정한 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바로 그 때입니다. 직장인이 이직을 고려할 때, '높은 연봉과 화려한 직함을 주지만 비윤리적인 업무를 감수해야 하는 회사'와 '연봉은 적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나침반을 따라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세상의 나침반은 전자를 가리키고, 성경의 나침반은 후자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과의 평가'를 받을 때 우리는 이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연말 고과 평가 시즌, 회사는 철저히 숫자로 표현된 실적을 바탕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보상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직성을 일부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남을 돕고 협력하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반대로,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헌신과 봉사의 양으로 서로를 평가하는 은근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교회의 기준 사이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의 가치와 성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며, 양쪽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셋째, '자원의 사용'을 결정할 때 갈등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받았을 때, 이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더 좋은 차를 사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선교를 위해 헌금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주말에 '자기 계발과 재충전을 위해 온전히 쓸 것인가' 아니면 '교회 봉사와 섬김에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것(Good)'과 '더 좋은 것(Best)' 사이에서의 우선순위 결정 문제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나의 자원이 진정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넷째, 인생의 '위기' 또는 '정점'에 도달했을 때 이 갈등은 가장 본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큰 실패를 겪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성공이 다 무엇이었나?"라는 허무함과 함께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되묻게 됩니다. 반대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큰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세상적 성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나침반이 진정한 만족과 평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 두 가치관이 충돌하는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가치관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충돌하지만, 특히 그 충돌이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나는 '전장(戰場)'과 같은 공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장은 단연 '직장과 비즈니스 현장' 입니다. 이곳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첨예하게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효율성, 이윤, 성과, 경쟁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랑, 정의, 공의'를 실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비현실적이거나 심지어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이익이 남는데 어떻게 정직 때문에 계약을 포기해?", "일단 경쟁에서 이겨야 선한 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동료를 경쟁 상대로 보고, 고객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만 보려는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곳에서, '일'을 '소명(Calling)'으로 여기고, 동료와 고객을 '섬김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은 매일의 영적 전쟁과도 같습니다.

두 번째 전장은 '미디어와 대중문화' 입니다. TV, 영화, 소셜미디어는 끊임없이 세상적 성공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입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값비싼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쉽게 부와 명예를 얻습니다. SNS 피드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과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공 =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인정'이라는 공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느끼고 불평하게 됩니다. 미디어는 '네가 가진 것이 너를 말해준다'고 속삭이지만, 성경은 '네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너를 말해준다'고 선언합니다. 이 두 메시지는 우리의 안방과 스마트폰 속에서 매일같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장은 의외로 '교회 공동체 내부' 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성공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성역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아무개 장로님은 사회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며, 세상적 성공을 신앙의 척도처럼 여기는 오류를 범합니다.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교회 내에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과 평신도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물질적 축복을 믿음의 증거라고 가르치는 '번영신학'이 자리 잡아, 가난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을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정죄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을 분별없이 수용할 때, 교회는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경쟁과 비교의 장이 되어버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열하고 조용한 전장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 입니다. 외부의 환경과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죄성과 욕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합니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눈앞의 이익과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 내면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잠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모든 외부의 충돌은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가치관의 전쟁이 반영된 것에 불과합니다.

5. Why (왜) 우리는 이 기준을 착각하는가?
우리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기준을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왜 자꾸만 착각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여러 구조적이고 내면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가시성의 함정' 때문입니다. 세상적 성공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힙니다. 연봉 액수, 자동차 모델, 아파트 평수는 누구나 쉽게 인지하고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표입니다. 반면, 성경적 성공의 척도인 '믿음의 성장', '성품의 변화', '하나님과의 친밀감' 등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통장에 숫자로 찍히지 않고, SNS에 자랑할 만한 사진으로 남기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보상을 더 크고 중요하게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빙산의 일각만 보고 그 거대함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둘째, '문화적 세뇌' 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성공'에 대한 세상의 정의를 끊임없이 주입받는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기대를 통해, 학교에서는 성적과 서열을 통해, 사회에서는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학습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압력은 매우 강력해서,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사고방식 전체를 지배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듣는 설교 말씀만으로는 수십 년간 우리 안에 축적된 세상의 가치 체계를 바꾸기가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매우 주체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가치관에 깊이 물들어 있는 '세상화된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셋째, '잘못된 신학의 오용' 이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특히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을 의도적으로 동일시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부자가 되고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는 듣기에는 매우 달콤하고 매력적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기복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믿음을 세상적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킵니다. 성경에 나오는 물질적 축복에 대한 약속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부와 성공을 신앙의 훈장처럼 여기게 만들고, 반대로 가난과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는 부당한 죄책감을 안겨줍니다. 이는 결국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신앙인들을 잘못된 목적지로 인도하는 고장 난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의 죄성' 에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자기 자신이 삶의 기준과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세상적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착 역시 이러한 교만의 현대적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타인의 인정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 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대신 나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자랑하려는 예레미야서의 경고가 바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6. How (어떻게) 올바른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잡고 올바른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세상적 성공을 무조건 배척하고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두 가치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도피가 아닌 '변혁'을, 타협이 아닌 '통합'의 길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성공의 '재정의(Redefinition)' - 나만의 성공 선언문 작성하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이 주입한 성공의 정의를 지우고,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나만의 '성공'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는 추상적인 결심에 그쳐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성공 선언문(Success Statement)'을 작성해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1단계 (가치 발견): "나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가치는 무엇일까?"를 기도하며 묵상합니다. (예: 정직, 성실, 사랑, 섬김, 공의 등)

2단계 (사명 연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과 소명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연결합니다. (예: "나는 탁월한 분석 능력을 통해, 기업의 비윤리적인 관행을 개선하고 정직한 경영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3단계 (선언문 작성):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나만의 성공을 정의합니다. "나에게 성공이란, 세상의 직위나 연봉이 아니라, 나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정직과 성실을 드러내고, 동료와 고객을 진심으로 섬김으로써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4셔 (정기적 검토): 이 선언문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 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읽으며 자신의 방향을 점검합니다.

방법론 2: 소유에서 '청지기 의식(Stewardship)'으로 관점 전환하기

세상적 성공이 '내 것'을 얼마나 많이 쌓는가의 문제라면, 성경적 성공은 '하나님의 것'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가의 문제입니다. 나의 시간, 재능, 재물, 건강, 심지어 내 인생까지도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을 갖는 것이 핵심입니다.

재물: "이 돈을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 가장 잘 쓸까?"가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실까?"라고 질문을 바꾸는 훈련을 합니다. 수입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구제와 선교를 위해 드리는 것은 이 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입니다.

재능: 나의 직업적 능력을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도구로 인식합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거나 비영리 단체에 재능 기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간: "시간은 금이다"라는 세상의 격언을 넘어,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분주함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여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방법론 3: 결과 중심에서 '과정의 신실함(Faithfulness)'으로 초점 이동하기

하나님은 우리의 최종 성과표(Performance)보다 그 과정에서의 태도와 동기(Faithfulness)를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충성'된 종을 찾으십니다.

'달란트 비유'의 재해석: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 두 달란트 남긴 종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두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동일하게 칭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일했는가입니다.

일상의 거룩함: 거창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매일의 업무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을 지키는 것, 동료의 작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성공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성과를 내는 공장이기 이전에, 우리의 믿음과 성품이 훈련되는 수도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방향 제시: 분리가 아닌 '통합(Integration)'의 삶을 향하여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을 분리하여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두 가치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성속(聖俗)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의 신앙과 평일의 삶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업 현장이 곧 선교지이며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기업가라면, 정직한 경영과 직원 복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나의 기업 안에 구현해낼 수 있습니다. 내가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사랑과 존중을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디자이너라면, 음란하고 폭력적인 문화가 아닌,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방식보다 더디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 끝에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영원한 가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같은 길 위에서 어떤 나침반을 보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느냐의 차이입니다. 고장 난 세상의 나침반을 버리고, 영원한 진리를 가리키는 성경의 나침반을 따를 때, 우리의 모든 발걸음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여정이 될 것입니다.

주제 1: 성공의 기준 착각: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정말 다른 길인가?

Topic 1: The Illusion of Success Standards: Are 'Worldly Success' and 'Biblical Success' Really on Different Paths?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3-24)

서론: 성공이라는 이름의 나침반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우리 모두는 손에 보이지 않는 나침반을 쥐고 있습니다.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방향, 그것은 바로 '성공'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기를 갈망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녀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성공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그 나침반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고장 난 나침반을 맹신하며 잘못된 목적지를 향해 맹렬히 노를 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는 '성공'에 대한 매우 명확하고 강력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더 높은 연봉, 더 넓은 집, 더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 사회적 지위와 명예. 미디어는 이러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삶을 화려하게 조명하고, 우리는 은연중에 그것이 유일한 성공의 모습이라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적 성공'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반면,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또 다른 기준이 존재합니다. 성경은 세상의 기준과는 사뭇 다른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겸손, 섬김, 사랑, 믿음,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우리는 이것을 '성경적 성공'이라 부릅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나침반이 종종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북쪽과 성경의 북쪽이 달라 보이는 혼란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은 갈등하고 방황합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경적 성공은 세상에서의 무능과 가난을 정당화하는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이 글은 바로 이 딜레마의 중심을 파고들고자 합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 5W1H)에 따라 '성공'이라는 개념을 입체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우리는 두 성공의 길이 정말 다른 길인지, 아니면 같은 길이지만 목적지가 다른 것인지 탐구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장 난 나침반을 수리하고, 인생이라는 항해의 진정한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과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와 깊이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1. Who (누가) 이 문제를 고민하는가?
이 질문은 특정 계층이나 직업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보편적인 고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회초년생과 청년들이 이 문제의 가장 전면에 서 있습니다. 이제 막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며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장 열정적으로 달려가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인정받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과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느낍니다. 동시에, 주일 예배에서 듣는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말라'는 메시지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 야근과 주말 근무를 불사하며 성과를 내는 것이 정말 '믿음으로 사는 것'일까? 그들의 고민은 현실과 신앙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됩니다.

둘째, 기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들 역시 이 문제로 깊이 고뇌합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이윤 극대화와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정직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유혹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 기업가로서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길을 걷고자 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인지 늘 시험에 듭니다. 이익을 포기하고 정직을 택했을 때 오는 사업적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해 달려온 나의 모든 성취가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교만은 아닐까? 그들의 어깨 위에는 자신과 직원들의 생계, 그리고 신앙적 양심이라는 무거운 짐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셋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딜레마를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과정에서 갈등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도록 독려하고 지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녀가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아는 신앙인으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이 두 가지 바람이 충돌할 때 부모는 혼란에 빠집니다. 자녀에게 세상적 성공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신앙 교육일까? "하나님만 잘 믿으면 다 책임져 주신다"고 말하며 현실적인 준비를 소홀히 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이 아닐까?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의 인생 나침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그들의 고민은 더욱 신중하고 무겁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 사이의 갈등은 목회자나 신학자만의 신학적 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문제이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이 고민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입니다.

2. What (무엇이) '성공'인가? - 두 나침반의 본질적 차이
우리가 혼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이라는 단어 아래 두 개의 전혀 다른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개념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문제의 절반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치 소금과 설탕이 둘 다 흰색 가루이지만 그 맛과 쓰임새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외형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근원과 목적, 측정 방식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세상적 성공의 본질: '소유(Having)'와 '성취(Achieving)'

세상적 성공은 기본적으로 '소유'와 '성취'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는 외부로부터 확인 가능하고, 수치로 계량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의됩니다.

기준점: '나' 자신 또는 타인과의 '비교'입니다. 나의 성공은 타인의 성공과 비교하여 측정됩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을 때, 더 높은 위치에 올랐을 때 성공했다고 느낍니다.

목표: 부, 명예, 권력, 인기 등 외적인 가치의 '극대화'입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얻는 것이 주된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측정 방식: 통장 잔고, 직급, 아파트 평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 등 '가시적'이고 '계량적'인 지표로 측정됩니다.

결과: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지만, 동시에 더 큰 성공을 향한 갈증과 타인에 대한 시기심,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그 본질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성경적 성공의 본질: '존재(Being)'와 '관계(Relationship)'

반면, 성경적 성공은 소유나 성취가 아닌 '존재'와 '관계'에 그 뿌리를 둡니다. 이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상태, 그리고 하나님 및 이웃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의됩니다.

기준점: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과 그분의 성품입니다. 나의 성공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과 재능을 얼마나 신실하게 감당했는가로 측정됩니다.

목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내면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성숙'입니다. 돈과 명예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측정 방식: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온유, 절제 등 '비가시적'이고 '내면적'인 가치로 측정됩니다. 이는 세상의 저울로는 잴 수 없습니다.

결과: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평안과 기쁨을 줍니다. 환경이나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정체성을 세워주며, 그 가치는 영원합니다.

이처럼 두 성공은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세상적 성공이 '무엇을 이루었는가(What you have done)'에 초점을 맞춘다면, 성경적 성공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Who you have become)'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 사업가가 큰 부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동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를 이루는 과정이 정직했는지, 그 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인격이 더욱 탐욕스러워졌는지 아니면 더욱 관대해졌는지에 따라 두 성공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길이 완전히 별개라고 단정하기보다, 같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어떤 나침반을 보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When (언제) 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가?
이론적으로 두 성공의 차이를 아는 것과, 삶의 현장에서 그 갈등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 내적 갈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결정적인 순간마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수면 위에 떠 오릅니다.

첫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갈등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전공을 선택할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흥미가 없는 학과'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불안정한 학과'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이 바로 그 때입니다. 직장인이 이직을 고려할 때, '높은 연봉과 화려한 직함을 주지만 비윤리적인 업무를 감수해야 하는 회사'와 '연봉은 적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나침반을 따라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세상의 나침반은 전자를 가리키고, 성경의 나침반은 후자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과의 평가'를 받을 때 우리는 이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연말 고과 평가 시즌, 회사는 철저히 숫자로 표현된 실적을 바탕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보상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직성을 일부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남을 돕고 협력하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반대로,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헌신과 봉사의 양으로 서로를 평가하는 은근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교회의 기준 사이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의 가치와 성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며, 양쪽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셋째, '자원의 사용'을 결정할 때 갈등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예상치 못한 보너스를 받았을 때, 이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더 좋은 차를 사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선교를 위해 헌금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나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주말에 '자기 계발과 재충전을 위해 온전히 쓸 것인가' 아니면 '교회 봉사와 섬김에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것(Good)'과 '더 좋은 것(Best)' 사이에서의 우선순위 결정 문제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나의 자원이 진정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넷째, 인생의 '위기' 또는 '정점'에 도달했을 때 이 갈등은 가장 본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큰 실패를 겪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성공이 다 무엇이었나?"라는 허무함과 함께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되묻게 됩니다. 반대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큰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세상적 성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나침반이 진정한 만족과 평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됩니다.

4. Where (어디에서) 이 두 가치관이 충돌하는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가치관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충돌하지만, 특히 그 충돌이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나는 '전장(戰場)'과 같은 공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장은 단연 '직장과 비즈니스 현장' 입니다. 이곳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첨예하게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효율성, 이윤, 성과, 경쟁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랑, 정의, 공의'를 실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비현실적이거나 심지어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이익이 남는데 어떻게 정직 때문에 계약을 포기해?", "일단 경쟁에서 이겨야 선한 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동료를 경쟁 상대로 보고, 고객을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만 보려는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곳에서, '일'을 '소명(Calling)'으로 여기고, 동료와 고객을 '섬김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은 매일의 영적 전쟁과도 같습니다.

두 번째 전장은 '미디어와 대중문화' 입니다. TV, 영화, 소셜미디어는 끊임없이 세상적 성공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입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값비싼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쉽게 부와 명예를 얻습니다. SNS 피드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과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공 =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인정'이라는 공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느끼고 불평하게 됩니다. 미디어는 '네가 가진 것이 너를 말해준다'고 속삭이지만, 성경은 '네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너를 말해준다'고 선언합니다. 이 두 메시지는 우리의 안방과 스마트폰 속에서 매일같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전장은 의외로 '교회 공동체 내부' 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성공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성역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아무개 장로님은 사회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며, 세상적 성공을 신앙의 척도처럼 여기는 오류를 범합니다.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교회 내에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과 평신도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물질적 축복을 믿음의 증거라고 가르치는 '번영신학'이 자리 잡아, 가난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을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정죄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을 분별없이 수용할 때, 교회는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경쟁과 비교의 장이 되어버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열하고 조용한 전장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 입니다. 외부의 환경과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죄성과 욕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합니다. 영원한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눈앞의 이익과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 내면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에 잠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모든 외부의 충돌은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가치관의 전쟁이 반영된 것에 불과합니다.

5. Why (왜) 우리는 이 기준을 착각하는가?
우리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기준을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왜 자꾸만 착각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여러 구조적이고 내면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가시성의 함정' 때문입니다. 세상적 성공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힙니다. 연봉 액수, 자동차 모델, 아파트 평수는 누구나 쉽게 인지하고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표입니다. 반면, 성경적 성공의 척도인 '믿음의 성장', '성품의 변화', '하나님과의 친밀감' 등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통장에 숫자로 찍히지 않고, SNS에 자랑할 만한 사진으로 남기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보상을 더 크고 중요하게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빙산의 일각만 보고 그 거대함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둘째, '문화적 세뇌' 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성공'에 대한 세상의 정의를 끊임없이 주입받는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기대를 통해, 학교에서는 성적과 서열을 통해, 사회에서는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학습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압력은 매우 강력해서,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사고방식 전체를 지배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듣는 설교 말씀만으로는 수십 년간 우리 안에 축적된 세상의 가치 체계를 바꾸기가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매우 주체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가치관에 깊이 물들어 있는 '세상화된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셋째, '잘못된 신학의 오용' 이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특히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을 의도적으로 동일시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부자가 되고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는 듣기에는 매우 달콤하고 매력적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기복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믿음을 세상적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킵니다. 성경에 나오는 물질적 축복에 대한 약속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부와 성공을 신앙의 훈장처럼 여기게 만들고, 반대로 가난과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는 부당한 죄책감을 안겨줍니다. 이는 결국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신앙인들을 잘못된 목적지로 인도하는 고장 난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의 죄성' 에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자기 자신이 삶의 기준과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세상적 성공에 대한 우리의 집착 역시 이러한 교만의 현대적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타인의 인정을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 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대신 나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자랑하려는 예레미야서의 경고가 바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6. How (어떻게) 올바른 성공을 추구할 것인가? - 방법론과 방향 제시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잡고 올바른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세상적 성공을 무조건 배척하고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두 가치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도피가 아닌 '변혁'을, 타협이 아닌 '통합'의 길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법론 1: 성공의 '재정의(Redefinition)' - 나만의 성공 선언문 작성하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이 주입한 성공의 정의를 지우고,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나만의 '성공'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는 추상적인 결심에 그쳐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성공 선언문(Success Statement)'을 작성해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1단계 (가치 발견): "나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가치는 무엇일까?"를 기도하며 묵상합니다. (예: 정직, 성실, 사랑, 섬김, 공의 등)

2단계 (사명 연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과 소명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연결합니다. (예: "나는 탁월한 분석 능력을 통해, 기업의 비윤리적인 관행을 개선하고 정직한 경영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3단계 (선언문 작성):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나만의 성공을 정의합니다. "나에게 성공이란, 세상의 직위나 연봉이 아니라, 나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정직과 성실을 드러내고, 동료와 고객을 진심으로 섬김으로써 그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4셔 (정기적 검토): 이 선언문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 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읽으며 자신의 방향을 점검합니다.

방법론 2: 소유에서 '청지기 의식(Stewardship)'으로 관점 전환하기

세상적 성공이 '내 것'을 얼마나 많이 쌓는가의 문제라면, 성경적 성공은 '하나님의 것'을 얼마나 잘 관리했는가의 문제입니다. 나의 시간, 재능, 재물, 건강, 심지어 내 인생까지도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을 갖는 것이 핵심입니다.

재물: "이 돈을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해 가장 잘 쓸까?"가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실까?"라고 질문을 바꾸는 훈련을 합니다. 수입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구제와 선교를 위해 드리는 것은 이 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입니다.

재능: 나의 직업적 능력을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도구로 인식합니다.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거나 비영리 단체에 재능 기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간: "시간은 금이다"라는 세상의 격언을 넘어,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분주함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여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방법론 3: 결과 중심에서 '과정의 신실함(Faithfulness)'으로 초점 이동하기

하나님은 우리의 최종 성과표(Performance)보다 그 과정에서의 태도와 동기(Faithfulness)를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충성'된 종을 찾으십니다.

'달란트 비유'의 재해석: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이 두 달란트 남긴 종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두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동일하게 칭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해 신실하게 일했는가입니다.

일상의 거룩함: 거창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매일의 업무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을 지키는 것, 동료의 작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성공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성과를 내는 공장이기 이전에, 우리의 믿음과 성품이 훈련되는 수도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방향 제시: 분리가 아닌 '통합(Integration)'의 삶을 향하여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을 분리하여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두 가치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이는 '성속(聖俗)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의 신앙과 평일의 삶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업 현장이 곧 선교지이며 예배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기업가라면, 정직한 경영과 직원 복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나의 기업 안에 구현해낼 수 있습니다. 내가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사랑과 존중을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디자이너라면, 음란하고 폭력적인 문화가 아닌,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방식보다 더디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 끝에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영원한 가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같은 길 위에서 어떤 나침반을 보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느냐의 차이입니다. 고장 난 세상의 나침반을 버리고, 영원한 진리를 가리키는 성경의 나침반을 따를 때, 우리의 모든 발걸음은 그 자체가 '성공적인' 여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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