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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대위임령

1부 상: 예수님의 대위임령 – 성경적 토대와 신학적 총론

서론: 대위임령의 중심성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기독교 신학과 선교학에서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규정하는 근본적 선언이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은 교회의 사명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며, 동시에 모든 신앙 공동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이자,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증언은 단순히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구체적 실천이어야 한다. 대위임령은 교회의 선택적 활동이 아니라, 존재론적 정체성이다. 따라서 신학적·역사적·실천적 차원에서 대위임령을 탐구하는 일은 교회의 본질을 규명하는 작업과 같다.

1장: 대위임령의 성경적 맥락
1.1 부활과 파송

대위임령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선포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결되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신 권세를 근거로 제자들을 파송하셨다. 즉, 선교 명령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우주적 권세를 소유하신 주님의 주권적 선언이다.

1.2 구약의 성취

대위임령은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열방 선교의 완성이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너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신약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그 언약의 성취로 나타난다. 시편 67편, 이사야 49장 등에서 강조된 열방의 구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구체화된다.

1.3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연결

마태복음의 대위임령과 더불어, 마가복음 16장 15절의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 24장 47절의 “모든 민족에게 회개가 전파될 것이라”, 요한복음 20장 21절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선언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한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그 절정을 이룬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2장: 대위임령의 신학적 기초
2.1 하나님의 주권과 선교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며, 대위임령의 근거를 자신의 주권에 두셨다. 선교는 인간의 열심이나 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이루어지는 역사다. 선교는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의 필연적 열매다.

2.2 삼위일체와 선교

대위임령은 삼위일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례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라는 명령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선교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임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으며, 성령은 교회를 권능으로 세우셔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2.3 제자도와 선교

대위임령의 핵심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라”는 선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포괄적 명령이다. 제자 삼는다는 것은 단순한 회심이나 교회 등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르침과 양육, 그리고 삶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사역이다. 따라서 선교는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의 긴밀한 통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3장: 대위임령의 신약신학적 해석
3.1 바울 신학과 대위임령

바울 사도는 대위임령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복음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려 함이라”(롬 16:26)고 설명하며, 자신의 사역을 “이방인의 사도”(롬 11:13)라 정의했다. 그의 선교 여정은 예수님의 명령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3.2 요한계시록과 열방

요한계시록 7장 9절은 대위임령의 궁극적 결실을 보여준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보좌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은, 선교가 단순한 과업이 아니라 영원한 예배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4장: 대위임령의 교회론적 의미
4.1 교회의 정체성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 공동체다. 대위임령은 목회와 선교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무너뜨리고, 교회의 모든 활동을 선교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게 한다.

4.2 예배와 선교

예배는 대위임령의 근원이자 목적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때, 자연스럽게 세상을 향한 증언이 흘러나간다. 또한 선교의 최종 목적은 열방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다.

5장: 대위임령과 현대 선교 신학
5.1 미시오 데이(Missio Dei)

현대 선교 신학은 대위임령을 미시오 데이(Missio Dei), 즉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선교는 교회의 발명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 활동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도구이자 증인이다.

5.2 세계화와 선교

오늘날 세계화와 이주 현상은 대위임령의 적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선교는 이제 특정 지역으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주민·난민·도시 속 다문화 사회를 향한 증언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론: 대위임령의 총론적 의의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교회의 선택 과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핵심이다. 성경 전체의 구속사는 대위임령으로 수렴하며, 교회는 이 명령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 대위임령은 하나님의 나라가 열방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부르는 명령이다.

삼위일체의 참여 – 교회는 아버지·아들·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다.

제자도의 삶 – 단순한 전도나 등록이 아닌, 삶의 변화를 통한 제자 양육이 중심이다.

궁극적 예배 – 모든 민족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미래를 지향한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 모든 신앙인의 삶은 대위임령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1부 하: 예수님의 대위임령 – 역사적 전개와 교리적 의미
서론: 역사 속에 뿌리내린 대위임령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단순히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제자들에게만 유효했던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사의 흐름을 형성하고 방향을 규정한 원동력이었다. 기독교 역사 전반을 돌아보면, 대위임령에 대한 순종과 해석이 교회의 부흥과 쇠퇴를 좌우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대위임령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어 왔는지, 그리고 교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1장: 초대교회의 대위임령 이해
1.1 사도행전의 실현

사도행전은 대위임령의 역사적 첫 성취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는 유대인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스데반의 순교 이후 흩어진 성도들이 사마리아와 이방 지역으로 나아가면서 복음은 지리적·문화적 장벽을 넘어 확산되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은 예수님의 말씀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의 직접적 성취였다.

1.2 초대교부들의 선교 의식

이레네우스, 저스틴 마터, 오리겐과 같은 교부들은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대위임령이 단지 한 민족의 종교를 넘어서 세계적 진리임을 설파했다. 특히, 안디옥 교회는 다문화적 구성으로 인해 대위임령의 실천적 모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도 바로 안디옥 교회에서 비롯되었다.

2장: 중세 교회와 대위임령
2.1 수도원 운동과 선교

중세 시대는 선교 열정이 약화된 시기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수도원 운동은 대위임령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기도와 노동을 강조했으나 동시에 문화를 보존하고 주변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 아일랜드와 켈트 선교사들은 유럽 대륙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 개척과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2.2 십자군과 왜곡된 선교

십자군 전쟁은 대위임령을 왜곡한 사례로 평가된다. 예수님의 명령은 복음을 통한 제자 삼기를 중심으로 했으나, 중세의 교회는 종종 무력을 사용하여 강제적으로 영토와 신앙을 확장하려 했다. 이는 선교의 본질을 흐리게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의 폭력적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3장: 종교개혁과 대위임령의 재발견
3.1 루터와 칼빈의 이해

마르틴 루터는 대위임령을 교회와 목회자의 책임으로 보았지만, 선교적 의미를 깊이 확장하지는 못했다. 그는 당시 상황 속에서 교회의 개혁과 말씀의 회복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성경 번역과 신앙고백은 훗날 선교의 기초가 되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 교리를 강조했지만, 동시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함을 설교 속에서 일관되게 다루었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훗날 세계 곳곳에 목회자와 선교사를 파송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3.2 청교도와 대서양 선교

청교도들은 대위임령을 실천적으로 적용했다. 신대륙 이주는 단순한 정치적·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향한 신앙적 열정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교회 개척과 성경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복음 위에 세우고자 했다.

4장: 근대 선교 운동과 대위임령
4.1 현대 선교의 아버지 – 윌리엄 캐리

18세기 말, 윌리엄 캐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신으로 인도 선교에 헌신했다. 그는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attempt great things)라는 신념으로 대위임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사역은 근대 선교 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침례교 선교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4.2 19세기 대부흥과 세계 선교

모라비안 공동체, 미국과 영국의 부흥운동은 수많은 선교사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로 파송했다. 허드슨 테일러(중국 내지 선교회), 데이비드 리빙스턴(아프리카 선교), 아도니람 저드슨(버마 선교) 등은 대위임령 순종의 대표적 사례였다. 이들은 문화를 존중하며 현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삶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5장: 20세기 선교 운동과 대위임령
5.1 에딘버러 선교대회(1910)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대위임령을 세계 교회 공동의 사명으로 인식하게 한 사건이다. 이 대회는 “우리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라는 비전을 공유하며, 초교파적 협력의 기초를 마련했다.

5.2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로잔운동

20세기 중반 WCC는 선교를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 강조했으나, 때로는 사회참여와 복음 전도의 균형 문제로 논쟁이 일었다. 이에 반해 로잔운동(1974)은 “온전한 복음, 온전한 교회, 온 세상에”라는 구호로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며 대위임령의 균형을 회복했다.

6장: 교리적 의미와 오늘의 적용
6.1 대위임령과 교회론

대위임령은 교회의 본질을 규정한다. 교회는 단순히 내부 결속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으로 파송된 공동체다. 따라서 선교 없는 교회는 정체성을 상실한 교회라 할 수 있다.

6.2 대위임령과 구원론

대위임령은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통해,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음을 선언한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보편적임을 드러내며,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6.3 대위임령과 종말론

대위임령은 단순히 현재적 사명이 아니라, 종말론적 비전을 가진다. 마태복음 24장 14절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한다. 즉, 선교는 종말의 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론: 역사와 교리를 관통하는 대위임령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초대교회에서 시작하여 교부 시대, 중세, 종교개혁, 근대 선교 운동, 현대 세계 교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과 실천을 낳았다. 그 과정 속에서 왜곡과 실패도 있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교회는 여전히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는 교회의 역사와 교리가 일관되게 증언하는 진리이다.

오늘의 교회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대위임령에 순종하는 공동체로 서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존재의 이유 자체를 대위임령 속에서 다시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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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상: 예수님의 대위임령 – 방법론과 원리
서론: 대위임령의 방법론적 성격

예수님의 대위임령(마 28:18–20)은 단순히 “가라”는 명령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내포한다. "가서, 제자 삼아, 세례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네 가지 동사는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는 과정과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대위임령이 내포한 선교 방법론을 신학적, 실천적 측면에서 풀어내고, 현대 선교 전략과 원리에 적용해 본다.

1장: "가라" – 파송과 이동의 원리
1.1 능동적 파송의 명령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가라”(πορευθέντες)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파송의 개념을 포함한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자리, 익숙한 문화와 공동체를 떠나 타자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1.2 파송 교회의 역할

파송은 단순히 개인의 헌신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가 기도, 재정, 동역으로 함께 책임지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것(행 13:1–3)은 교회가 대위임령 실천의 주체임을 보여준다.

1.3 현대 선교에서의 파송 원리

오늘날 “가라”는 지리적 이동을 넘어서, 이주민 선교, 디지털 선교, 도심 선교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이동의 핵심은 단순한 장소 변경이 아니라, 타문화와 타민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장: "제자 삼아" – 관계적 양육의 원리
2.1 제자의 정의

예수님은 단순히 신앙의 추종자가 아니라, 삶을 전적으로 따르는 제자를 원하셨다. 제자는 지식적 동의만으로 형성되지 않고, 인격적 변화와 삶의 순종을 통해 자라난다.

2.2 제자 삼기의 과정

복음 선포: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삶의 나눔: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주었다(살전 2:8).

공동체 훈련: 제자는 개인주의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훈련된다.

2.3 제자 삼기의 핵심 원리

제자 삼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관계적 과정이다. 멘토링, 동행, 본보기, 실습을 통해 다음 세대를 양성한다. 따라서 선교는 숫자 중심의 개종 운동이 아니라 제자 공동체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3장: "세례 주어" – 공동체 편입의 원리
3.1 세례의 신학적 의미

세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이다. 이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에 편입되는 표지이다.

3.2 선교와 교회 개척

세례는 개인의 신앙 고백일 뿐 아니라,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시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위임령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교회 개척과 연결된다. 선교는 단순한 개인 전도에 머물지 않고, 복음을 담을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3.3 현장 적용

선교지에서 세례는 종종 문화적·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례는 새로운 소속, 새로운 가족을 제공한다. 교회는 이들을 영적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4장: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지속적 교육과 실천의 원리
4.1 교육적 측면

선교는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교육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이는 단순한 교리 학습을 넘어,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4.2 실천적 제자도

"지키게 하라"는 표현은 순종과 실천을 강조한다. 복음은 지식으로만 남아서는 안 되고,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선교 교육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도록 총체적 훈련을 지향해야 한다.

4.3 현대적 적용

오늘날 선교 교육은 신학교육, 제자훈련 프로그램, 온라인 신앙 교육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본질적 교육이다.

5장: 대위임령의 삼위일체적 방법론
5.1 성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는 선교의 근원이다. 대위임령은 성부의 권위를 전제로 한다(“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선교는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

5.2 성자 예수

예수님은 선교의 본질이자 모델이다. 그는 성육신을 통해 “찾아오심”을 보여주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의 기초를 마련하셨다. 따라서 선교 방법은 언제나 예수님의 방식을 닮아야 한다.

5.3 성령 하나님

성령은 선교의 동력이다. 오순절 사건은 대위임령의 실질적 출발점이었다. 오늘날도 성령은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복음을 증언하게 하신다.

6장: 문화 간 선교의 방법론
6.1 문화 이해의 중요성

대위임령은 "모든 민족"(πάντα τὰ ἔθνη)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선교는 본질적으로 문화 간 사역이다. 언어, 가치관, 종교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효과적 선교가 불가능하다.

6.2 상황화(Contextualization)

복음은 절대적 진리이지만, 그 표현은 문화에 맞게 상황화되어야 한다.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적 언어로, 회당에서는 성경적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선교사는 복음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현지인의 사고와 언어로 복음을 설명해야 한다.

6.3 현대 선교 사례

한국 교회가 중앙아시아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슬람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서는 공동체 중심의 문화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가족적 돌봄으로 확장해야 한다.

서구의 세속 사회에서는 철학적·윤리적 대화 속에서 복음이 전달되어야 한다.

7장: 대위임령과 총체적 선교
7.1 영혼과 육체를 아우르는 선교

예수님은 단지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병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다. 따라서 대위임령의 실천은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해야 한다.

7.2 샬롬 선교

성경적 샬롬은 하나님과의 화목, 인간과의 화목, 창조 세계와의 화목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위임령은 단순한 종교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회복을 지향한다.

결론: 방법론적 통합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가서, 제자 삼고, 세례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네 단계로 구성된 완전한 선교 방법론이다. 이는 단순한 전략적 지침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수행하는 본질적 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반영한다. 오늘날 교회는 이 원리를 현대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고, 다양한 문화와 사회 속에 복음을 상황화하여 적용해야 한다.


2부 하: 예수님의 대위임령 – 상황 적용과 현장 사례
서론: 대위임령의 시대적 적용

예수님의 대위임령(마 28:18–20)은 1세기의 유대 땅에서 선포되었지만, 그 본질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다. 오늘날 교회는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이 명령을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2부 하에서는 대위임령이 현대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지, 그리고 어떤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는지를 다룬다.

1장: 교회와 선교의 현장 적용
1.1 지역 교회의 역할

지역 교회는 대위임령의 최일선이다.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예배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흩어지는 파송 공동체이다. 주일의 예배가 주중의 선교적 삶으로 연결될 때, 교회는 대위임령을 살아내는 훈련소가 된다.

1.2 파송 선교사와 동역

대위임령은 교회의 일부 헌신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문적이고 전임적인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교회는 선교사를 기도, 재정, 목회적 돌봄으로 동역해야 한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동일한 소명을 이어가야 한다.

1.3 도시 교회와 세계 선교

현대의 대도시는 다문화와 다종교가 공존하는 장이다. 도시 선교는 곧 세계 선교이다. 서울, 뉴욕,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 다양한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열방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2장: 선교 현장의 구체적 사례
2.1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

한국 교회는 복음을 받은 지 불과 한 세대 만에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이후, 한국 교회는 선교적 자각을 가지게 되었고, 몽골·만주·중국 등지로 선교사를 보냈다. 이는 대위임령의 지역적, 문화적 확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2.2 20세기 아시아 선교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현지 교회가 성장하면서 자국 내 소수 민족과 미전도 종족을 향한 선교를 감당하게 되었다. 이는 “제자 삼아”라는 대위임령의 원리가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민족에게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2.3 현대 아프리카 선교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서구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현지인 지도자들이 이어받아 선교의 주체가 되고 있다. 나이지리아, 케냐, 가나 등지의 교회들은 오히려 서구나 아시아로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대위임령은 더 이상 “서구에서 비서구로”라는 단일 방향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모든 나라로라는 다방향적 흐름을 형성한다.

2.4 디아스포라 선교

오늘날 이민자 공동체는 대위임령 실천의 중요한 장이다. 미국 내 한인 교회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히스패닉·아프리카계 이웃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다문화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3장: 도전과 위기
3.1 세속화와 상대주의

서구 사회에서 교회는 빠르게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종교가 같다”는 사고방식은 대위임령의 절대적 복음 선포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음의 진리성과 제자도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드러난다.

3.2 박해와 제한 지역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기독교 선교가 법적으로 제한되거나 심한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지역에서 지하교회와 비공식적 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위임령은 외적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주권적 명령이다.

3.3 교회의 내적 문제

물질주의, 교회 성장주의, 프로그램 중심주의는 대위임령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선교는 교회의 “부속 활동”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 자체임을 회복해야 한다.

4장: 현대 선교의 전략적 적용
4.1 미전도 종족 선교

오늘날 약 7천여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s, UPG)이 존재한다. 대위임령의 "모든 민족"(πάντα τὰ ἔθνη)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 종족들에게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성경 번역, 의료 선교, 교육 선교는 효과적인 통로가 된다.

4.2 디지털 선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새로운 선교의 장이다. 성경 앱, 온라인 예배, 유튜브 강의 등은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한다. 대위임령은 이제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도 적용된다.

4.3 비즈니스 선교(BAM: Business as Mission)

경제 활동과 선교를 결합하는 모델은 제한 지역에서 효과적이다. 선교사가 기업가로서 합법적으로 현지에 거주하면서, 고용 창출과 사회적 기여를 통해 복음을 전한다. 이는 "삶으로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대위임령의 현대적 실천이다.

4.4 총체적 선교

복음은 영혼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의료, 개발, 인권, 환경 문제 등 총체적 삶의 영역 속에서 복음이 증언될 때, 대위임령은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 확장으로 나타난다.

5장: 성령의 역할과 교회의 순종
5.1 성령의 인도

대위임령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선교의 주체이심을 증언한다. 성령은 길을 열고, 언어를 초월하게 하며, 담대함을 부여하신다. 오늘날 교회도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대위임령을 실천할 수 없다.

5.2 교회의 순종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약속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과제는 전략을 넘어선 순종이다. 대위임령은 선택적 활동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명령이다.

6장: 사례 연구
6.1 중국 가정교회 운동

중국 교회는 박해 속에서 급격히 성장하며, 이제는 “10/40 창”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는 대위임령이 한 국가의 역사적·정치적 환경을 초월하여 성취됨을 보여준다.

6.2 한국 교회의 선교적 책임

21세기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숫자 중심이 아니라, 제자 삼는 질적 선교가 요청된다. 한국 교회는 경제적 부흥과 함께 주어진 사명을 선교로 완성해야 한다.

6.3 서구의 재선교 필요성

유럽과 북미는 더 이상 선교사 파송의 주체만이 아니다. 세속화된 서구 사회는 다시금 복음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아시아 교회가 서구를 향해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대위임령이 순환적·상호적으로 성취됨을 보여준다.

결론: 오늘의 대위임령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제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절대적인 명령이다. 교회는 시대와 상황을 따라 선교의 방법과 전략을 새롭게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가라: 국경과 문화를 넘어 이동하라.

제자 삼아라: 단순한 개종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제자를 세우라.

세례 주어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살아내게 하라.

오늘의 교회는 이 명령을 시대와 장소, 문화와 기술 속에서 새롭게 구현해야 한다. 대위임령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향한 교회의 영원한 사명이다.

읽음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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