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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형은 커졌지만, 영혼은 건강한가? 46 

2. 외형은 커졌지만, 영혼은 건강한가?

한국교회의 여러 모습 가운데, 교세 확장에 집중하는 흐름은 오늘날 특별히 주목할 만합니다. 겉으로는 눈부신 성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 본연의 사명과 영적 본질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건물을 크게 짓고 교인 수를 늘리며, 그럴듯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행사를 크게 치르는 일이 과연 복음적 성숙을 이끌어 내는지, 아니면 오히려 세속적 경쟁에 편승해 교회의 영적인 깊이를 잃게 만드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본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며,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적 성격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교회에서는 때때로 이러한 본질적 속성이 희미해지고, 외적인 성공과 화려함에 치중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빌딩처럼 높이 솟은 예배당이나 대규모의 미디어 설비, 수준 높은 음악 공연으로 단장된 예배도 분명 시대에 맞춰 발전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모든 ‘겉’의 요소가 ‘복음의 핵심’이나 ‘영혼 돌봄’보다 앞자리에 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교회가 교세 확장을 이루는 방식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한국교회는 급속한 부흥을 경험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통치 시대 외에도 1970~80년대에는 국가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해 온 인구가 교회에 유입되기도 했고, 그 당시 전도와 부흥회가 대대적으로 일어나 많은 이들이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 시기의 성장은 나름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교회들은 날마다 기도회를 열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열심으로 전도했습니다. 즉,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는 갈급함과 성도들의 헌신이 결과적으로 성장으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교세 확장이 추구되는 양상을 보면, 교인 수 증가와 건물 신축, 그리고 화려한 프로그램이 스스로 목적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대출까지 받아 가며 초대형 건축을 추진하면서, 그 과도한 부채 때문에 오히려 성도들을 압박하거나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헌금을 독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예배나 교육, 선교와 봉사 같은 교회의 본질적 사역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교회가 빚을 지게 되면, 계속해서 ‘돈’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산과 지출을 건축비나 유지비에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교역자들은 더욱 열심히 ‘교인 수 증가’와 ‘재정 확보’를 추구하게 됩니다.

물론, 건물을 새로 짓고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하기 위해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교회가 성장하고 큰 건물을 지음으로써 지역사회에 더 폭넓은 섬김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고 제자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세우는 과정 없이, 단지 ‘교세 확장’을 위해 큰 공간과 화려한 시설을 먼저 마련해 놓고, 그 이후에 사람을 무리하게 채우려는 식의 접근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세상 경영학의 마케팅, 홍보 기법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실제로 영혼들이 복음을 깨닫고 삶이 변화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우려가 큽니다.

더욱이 교회가 화려한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경우도 깊이 살펴볼 만합니다. 예배 자체가 공연화되고, 대규모 행사를 치르며, 최신 미디어 장비(LED 초대형 전광판)와 조명, 음향 효과 등으로 성도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식의 시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문화를 담아내는 예배가 전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눈으로 보기에 화려한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교인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이거나, ‘더 많은 인원을 끌어오기 위해서’에만 한정된다면, 예배가 본연의 목적인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자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배가 예배가 아닌, 일종의 쇼(Show)가 되어 버리면, 성도들에게 남는 것은 ‘재미’나 ‘감동’의 순간적인 체험뿐이고, 그 뒤에는 심령의 깊은 변화나 참된 회개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나님 중심성’과 ‘성도들의 영적 성숙’입니다. 이것은 조직 운영이 아니라 영혼 돌봄과 제자 훈련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나 교세 확장과 화려한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모습은 결국 ‘인간 중심적’이고 ‘세속적 성공 논리’에 더 가깝습니다. 외형적인 규모와 화려함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크고 유명한 교회로 부상함으로써 교회 지도자나 특정 그룹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 등을 생각해 보면, 교회가 세상적 욕망과 구별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이러다 보면, 교회 내부에서도 성도들이 단지 수동적인 ‘관람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대규모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무대에서 ‘프로 수준’의 공연이 펼쳐지면, 교인은 그저 자리에 앉아 그것을 소비하는 존재로 머무르게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돌 콘서트나 대형 이벤트를 즐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가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오히려 ‘관계’입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알고, 함께 기도하며, 교제하고, 실제 삶 속에서 아픔을 나누고 격려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면, 교회가 아무리 커지고 프로그램이 화려해도 영적 충만함이 채워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가 잠시나마 외형적으로는 번성해 보일 수 있어도, 결국 영적, 도덕적 힘을 잃게 되면 쇠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가 어느 정도의 부와 인기, 그리고 영향력을 얻는 순간부터, 사회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왜 저 교회는 저렇게도 화려함만 앞세울까?’, ‘정말 거기에 복음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만약 교회 지도부가 솔직하게 내부를 성찰하고 “화려함 이면에 복음의 본질이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건강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한다면 문제가 덜 심각해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저 외형적 성장의 유혹에 빠진 채 계속 달려가다가 여러 부정적인 사건이 폭발하면, 교회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교회론적, 신학적 처방은 무엇일까요? 먼저, ‘교회론’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교회론은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하는데,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베소서 1장)이라고 했고, 신약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디모데전서 3장), “성령의 전”(고린도전서 3장) 등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성경적 비유는 교회가 단순히 ‘규모 있는 조직’이나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들이 살아 있는 관계’로 묶인 영적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교회는 늘 “영혼을 돌보고, 그 영혼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안내하며,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열매를 맺도록 돕는 역할”을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건물 신축이나 프로그램이 이 목적을 방해하거나 본질을 가리는 수준에 이른다면, 그것이 아무리 교세를 확장시키는 것처럼 보여도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둘째, 교회 내부의 문화가 ‘참여’와 ‘소통’, ‘제자 훈련’에 기반해 있어야 합니다. 대형 집회나 프로그램이 아무리 멋져도, 정작 성도들이 서로의 일상 속 문제나 신앙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그룹이나 교육 체계가 부실하면 교회 전체의 영적 건강은 취약해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열두 제자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시며, 그들을 직접 가르치고 양육하신 것처럼, 교회도 소수의 깊은 교제와 나눔을 통해 성도 개개인을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서로 격려할 때, 성도들은 프로그램을 ‘구경’하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받은 은사를 발휘하며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셋째, 교회가 외부적으로도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교세 확장과 화려한 행사에 에너지를 쏟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비중을 지역사회 봉사와 약자 보호, 해외, 국내 선교의 현장성 강화 등에 할애한다면, 교회는 그 자체로 세상의 의심을 반전시키고 “역시 교회답다.”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는 대형 공연이나 축제를 열기 위해 돈을 많이 쓰면서도, 정작 교회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데는 인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태도는 교회 외부의 비판을 부추길 뿐 아니라, 성도들 스스로도 “과연 이것이 복음적 삶인가?”라는 회의를 갖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변해야 합니다. 세상 기업에서 ‘CEO’식 리더십이 강조되다 보니, 교회에서도 목회자 혹은 지도부가 CEO처럼 행동하며 교회를 ‘경영’하려 든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관리가 필요한 영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교회가 근본적으로 영적 공동체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에게 ‘영적 성공’을 약속하거나, ‘흥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도들의 영혼을 양육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성도들을 동등한 형제자매로 대우하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선한 목자’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잃으면, 교회가 아무리 크게 성장해도 그것은 ‘세속적 성공’에 불과할 뿐, 진정한 영적 성숙으로 이어지긴 어렵습니다.

정리하자면, 교세 확장(건물 신축, 교인 수 증가)과 화려한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실제로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수준 높은 예배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이웃을 초대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복음의 본질과 목적에 부합하는가?’ 하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화려함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 교회가 얼마나 건강하게 영혼을 돌보며,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있는가?’라는 자기 점검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러한 성찰은 신학적으로도, 그리고 교회론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교회는 외형만 번쩍이고 안이 텅 빈 ‘장식용 건물’이 아니라, 소금과 빛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유기적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대규모 행사와 장비에 치중하다가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훈련과 가르침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닌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영적 갈급함을 ‘프로그램’으로만 채우려 해서는 안 되며, 교인 수가 늘어나는 것만 보고 성공을 확신하는 태도도 재고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그리스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건물이 웅장해지고, 교인 수가 많아지고, 세련된 행사를 여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감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영혼 사랑’과 ‘실천적 헌신’이 얼마나 진실한지, ‘예수님을 진정으로 본받는’ 모습이 드러나는지가 중요합니다. 세상은 이제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소외된 이웃에게 어떤 손길을 내미는지, ‘내 교회’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결국, “외형은 커졌지만, 영혼은 건강한가?”라는 물음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길이야말로, 현대 교회가 놓치고 있는 ‘복음의 핵심’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건물이 크고 프로그램이 화려한 것이 결코 죄악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회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된다면, 우리는 ‘영적 공동체’로서의 본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성장을 바라되, 그 성장이 ‘참된 복음의 능력’에서 비롯된 변화와 사랑, 섬김의 열매이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야말로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밝히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참된 의미의 부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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