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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글을 시작하며 먼저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한국 교회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 교회는 이 땅의 역경과 함께하며 눈부신 부흥을 이루어냈습니다. 일제강점기 핍박 속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켰고, 한국전쟁의 참혹한 폐허 속에서도 오직 복음으로 절망을 이겨냈습니다. 가난과 독재의 시대에는 사회의 등불이자,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 소리, 산마다 울려 퍼지던 통성 기도, 그리고 세계 각지로 파송된 선교사들의 헌신은 ‘한강의 기적’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기적이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단순히 종교 기관을 넘어, 민족의 희망이자 공동체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모든 영광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교회를 향한 신뢰를 거두고 있고, 젊은 세대는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교회 내에서는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한국 교회는 이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성찰과 회복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이 글은 한국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진단하고, 그 근원적인 원인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1. 영적 본질의 상실과 세속화
한국 교회가 겪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영적 본질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진리가, 어느새 '성공'과 '부'를 약속하는 번영 신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물론 믿음 안에서 물질적 축복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순간, 교회는 그 거룩한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양적 성장을 경험하면서, 교회는 '크기'와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교회는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목회자들은 수많은 성도를 거느리는 것을 목회적 성공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했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이기보다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더 이상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거룩한 부름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서비스’를 소비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채워줄 교회를 찾아다녔고, 교회는 그들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세속화는 개인의 경건 생활을 약화시켰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 성도들의 삶을 지탱했던 말씀 묵상, 깊은 기도, 그리고 헌신은 희미해졌습니다. 대신 주일 예배라는 형식적인 의무와 교회 프로그램 참여가 신앙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는 '성도'였지만, 세상 속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교회를 보며 '예수쟁이'라는 멸시와 조롱을 보내게 되었고, 교회가 외치는 복음의 메시지는 그 어떤 공신력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잊고, 거룩한 담장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것입니다.
번영 신학은 단순히 재정적 축복을 약속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구원관까지 왜곡시켰습니다. "예수 믿고 부자 되세요"라는 메시지는 복음의 본질인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자기성취와 성공'으로 대체했습니다. 성도들은 삶의 어려움과 고난을 신앙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번영을 설파할 때, 삶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조차 위로받지 못하는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더 열심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망하는 냉혹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메시지가 번영이라는 옷을 입을 때,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희망이 아닌, 성공한 자들의 모임이 되어버렸습니다.
2. 지도자의 권위주의와 투명성 결여
한국 교회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지도자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고난 속에서 희생과 헌신으로 성도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목회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권위를 세습하고, 마치 왕처럼 군림하는 '권위주의'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겨졌고, 성도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권위주의는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폐쇄적으로 만들었고, 비리와 부패가 싹트게 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의 재정 문제와 관련된 비리는 한국 교회의 신뢰를 가장 크게 훼손했습니다. 헌금의 사용처가 불투명하고, 거액의 재정이 목회자 개인의 사치나 교회의 외형적 성장을 위해 사용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들의 헌신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었고, 이는 교회를 향한 깊은 배신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기업보다 더 투명하고 윤리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재정적 투명성 결여는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교회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습니다.
또한, 일부 목회자들의 성적인 비행이나 도덕적 타락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행위를 저지르고도, 교회의 권위 뒤에 숨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한국 교회는 땜질식 처방에만 급급했고,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과 윤리적 자정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교회의 거룩함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일부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은 마치 왕국을 건설하듯 교회를 운영했으며, 교인들은 이들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권위주의는 건강한 비판과 견제를 봉쇄하고, 결국 교회를 병들게 하는 독소로 작용했습니다.
3. 세대 간의 단절과 소통 부재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다음 세대의 이탈입니다. 'MZ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청년들의 신앙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대 간의 소통 부재와 가치관의 충돌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결과입니다. 기성세대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권위적인 태도로 젊은 세대에게 헌신과 순종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합리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은 이러한 권위주의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왜 기도해야 하는지, 왜 봉사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더 이상 '따라야 할' 규범이 아니라, '선택해야 할' 가치였습니다. 교회가 그들에게 던진 답은 '오직 믿음'이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었지만, 그들은 '왜 믿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진정성 있는 답을 원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언어와 문화는 급변하는 시대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낡은 방식의 설교와 프로그램은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가 그들의 삶의 고민인 취업, 관계,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실질적인 대답을 주지 못했을 때, 그들은 교회를 떠나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다른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 급급했을 뿐,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는 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년들은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교회는 '믿음이 약해서 생긴 문제'라고 치부하며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교회가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신앙만을 이야기할 때, 젊은 세대는 교회를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공간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4. 교회 공동체성의 상실
초대 교회가 그랬듯,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 속에서 그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형화된 교회는 성도 개개인의 삶을 돌보기에는 너무나 커졌고, 성도들은 익명의 군중 속에 섞여 외로운 신앙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가 끝나면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흩어지는 '종교적 개인주의'가 만연해졌습니다.
특히, '교인 쇼핑'이라는 현상은 이러한 공동체성 상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성도들은 더 나은 목회자를 찾아, 더 좋은 시설을 찾아,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교회를 옮겨 다녔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소비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더욱 화려한 외형을 갖추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를 돌보고 아껴주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 제공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도들의 뿌리 없는 신앙을 조장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공동체 기능을 약화시켰습니다.
또한, 교단과 교회의 분열은 한국 교회의 연합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교단 간의 신학적, 정치적 갈등은 끝없이 이어졌고, 이는 작은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분열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해야 할 사명을 잊고, 서로 싸우는 데 힘을 낭비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의 모습은 사회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5. 선교적 사명의 약화와 세상과의 단절
한국 교회는 한때 열정적인 선교적 사명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뜨거운 열정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복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염된 공간으로 인식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며 '영적 요새'를 구축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교회는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읽지 못했습니다. 과학, 철학,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대해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지성인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인 미신'으로 치부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고통인 빈부 격차, 불공정, 인권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복음의 메시지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선교는 예배당 밖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대신, '교인'으로 머물게 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 직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터 선교'의 중요성을 간과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사회와 단절되었고, 복음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습니다.
문제들을 넘어, 희망을 향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영적 본질의 상실, 지도자의 권위주의, 세대 간의 단절, 공동체성의 붕괴,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문제들은 한국 교회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단순히 비판하고 낙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문제의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의 뜨거운 감격과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면의 영적 성숙에 집중해야 합니다. 거대한 시스템을 해체하고, 소박하지만 진정한 사랑과 섬김이 있는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을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고통받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겸손한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부흥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믿고,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한국 교회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세상의 존경을 다시 얻는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한 번 부흥의 원천을 만드는 한국교회를 위한 미래의 제언’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현실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 소망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