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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한경직 (Han Kyung-chik), 설교집

한경직 (Han Kyung-chik)의 설교집
- 부제: '한국 교회의 큰 목사', 사랑과 화해를 설교하다 -

서론: '한국 교회의 큰 목사', 사랑과 화해를 설교하다
🕊️ 한 목회자의 삶이 한 민족의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할 수 있을까요? 일제 강점기의 억압, 남북 분단의 비극, 6.25 전쟁의 폐허, 그리고 군부 독재와 민주화의 격랑까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찢겨진 민족을 품에 안고 눈물로 위로와 화해를 설교했던 거인. '한국 교회의 큰 목사'로 불리는 영락교회 설립자 한경직 목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의 설교집은 한 명의 천재 신학자가 쓴 정교한 논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산 치하의 북녘 땅을 떠나온 실향민의 아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의 절망, 그리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 앞에서, 한평생 사랑과 용서, 화해와 봉사라는 복음의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를 붙들고 씨름했던 한 위대한 목자의 심장의 기록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한경직 목사의 설교 속에 담긴 그의 삶과 신앙의 핵심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고통받는 시대를 향한 그의 메시지의 중심이었던 '사랑과 위로'의 복음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어떻게 교회의 담장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 구체적인 '봉사'로 이어졌는지, 마지막으로 그의 일생의 설교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온 교회를 울린 그의 역사적인 공개 회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통해 그의 유산을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본론: 찢겨진 민족을 향한 목자의 눈물
1. 설교의 심장: 사랑과 위로
한경직 목사의 설교 스타일은 카리스마 넘치는 부흥사의 불같은 외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의 강단은 오히려 온화하고, 인자하며, 눈물 어린 아버지의 목소리로 채워졌습니다.

사랑의 복음: 그의 모든 설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죄인을 용서하시고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하고도 간결한 언어로 반복해서 전했습니다.

실향민들을 위한 목자: 한경직 목사 자신도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영락교회는 처음부터 실향민들의 공동체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고향과 가족을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고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바로 그 고난의 한복판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했습니다.

2. 설교의 실천: 사회적 책임과 봉사
한경직 목사에게 신앙은 결코 개인의 내면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는 마땅히 이 사회와 민족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그는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민족을 비추는 등불: 그는 교회가 사회로부터 고립된 '그들만의 왕국'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설교에서 실천으로: 그의 이러한 설교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6.25 전쟁 직후, 그는 전쟁고아들을 위한 보린원, 중고등학교(보성, 영락), 병원 등 수많은 교육 및 사회복지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그의 목회는 단순히 영혼 구원을 넘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고 인재를 키우는 **'나라 세우기'**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3. 설교의 절정: 역사적인 회개
한경직 목사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 말, 수많은 목회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신사참배에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평생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짐이었습니다.

1992년 템플턴상 수상 연설: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이자, 가장 위대한 설교는 바로 이 때 이루어졌습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게 된 영광의 자리에서, 90세의 노목사는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과거를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 갔던 분들을 생각하면, 저는 죄인입니다."

회개의 능력: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어른이자 상징이었던 그의 이 공개적인 회개는, 한국 교회 전체에 거대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한경직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향한 교회의 공동 책임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겸손의 행위는, 그가 평생 설교했던, 가장 큰 죄인조차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그의 삶 전체로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습니다.

결론: 민족의 아픔을 껴안은 목회자
한경직 목사는 날카로운 신학자나 카리스마 넘치는 부흥사이기 이전에, 한평생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껴안고 눈물로 기도했던 **위대한 '목자'**였습니다. 그의 목회는 실향민을 품에 안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품에 안았으며, 마침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정직하게 품에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포용의 목회'**였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신학에 굳건히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회적으로 열려 있었으며, 교파를 초월하여 한국 교회 전체를 아우르려 했던 큰 그릇의 지도자였습니다.

전쟁 후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그가 미친 영향력은 실로 지대합니다. 영락교회는 이후 한국의 대형 장로교회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분열과 갈등, 이념 대립과 자기 의의 목소리가 높은 시대에, 한경직 목사의 삶과 설교는 우리에게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로 돌아가라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자기희생적인 사랑과, 급진적인 용서,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화해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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