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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와 그의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 (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
- 부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도 오해받는 설교 -

서론: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도 오해받는 설교
📜 만약 설교 한 편이 청중을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게 하고, 강단 아래를 통곡과 울부짖음으로 가득 채웠다면, 우리는 그 설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거미를 거머쥐고 불길 위에서 흔드는 하나님의 이미지, 당신의 심장을 향해 당겨진 진노의 활시위와 같은 무시무시한 비유로 가득 찬 설교. 이것이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장 유명한 설교,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전 강독에서 『신앙감정론』을 통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을 구별하려 했던 에드워즈의 정교하고 균형 잡힌 신학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그는 이 한 편의 '지옥불 설교'로 인해, 무자비하고 냉혹한 진노의 설교가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 설교는 1741년 7월 8일, 제1차 대각성 운동의 불길이 타오르던 시기에, 영적으로 무관심하고 마음이 완고하기로 소문났던 코네티컷 주 엔필드의 한 교회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이 설교의 목적은 단 하나,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회중의 안일함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들을 당장 그리스도께로 피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본 강독에서는 이 유명하고도 오해받는 설교를 깊이 분석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설교를 단지 공포를 조장하는 잔인한 글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의사의 '긴급 수술'과도 같은, 치밀한 논리와 강렬한 수사학이 결합된 목회적 행위로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본론: 진노의 하나님, 그 손에 들린 죄인들
이 설교는 전형적인 청교도 설교의 구조, 즉 본문 해설 - 교리 정립 - 적용의 순서를 따릅니다.

1. 설교의 뼈대: "그들의 발이 때가 되면 미끄러지리라"
에드워즈는 신명기 32장 35절의 한 구절, "그들의 발이 때가 되면 미끄러지리라"를 본문으로 삼습니다. 그는 이 이미지를 발전시켜 하나의 무서운 교리를 이끌어냅니다.

"악하고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유일한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들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 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을 붙잡아주지 않는다."

즉, 죄인은 마치 미끄러운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같아서, 언제라도 발이 미끄러져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 젊음, 도덕적인 노력, 교회의 출석 등 그 어떤 것도 안전장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변덕스러울 수 있는 '허락'만이 죄인을 잠시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에드워즈는 이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 마치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하듯 10가지 논점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청중이 기댈 수 있는 모든 거짓된 안전의 근거를 체계적으로 파괴합니다.

2. 영혼을 뒤흔드는 이미지들
설교의 '적용' 부분에 이르러, 에드워즈는 그의 신학적 논증을 청중의 심장에 직접 꽂히는 생생하고 끔찍한 이미지들로 전환시킵니다.

🔥 불길 위의 거미 비유: 이것은 설교 전체에서 가장 유명하고 충격적인 이미지입니다.

"여러분을 지옥의 구렁텅이 위에서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마치 어떤 사람이 거미나 혐오스러운 곤충을 불길 위에서 붙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혐오하시며, 끔찍하게 진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거미줄이 타오르는 불꽃을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이 비유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혐오스러우며, 전적으로 무력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댐에 갇힌 홍수 비유: 하나님의 진노는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댐 뒤에서 수위가 계속 불어나는 거대한 홍수와도 같습니다. 죄인의 죄가 쌓일수록 진노의 수위는 높아지고, 댐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위태롭습니다. 이는 재앙이 임박했다는 긴박감을 조성합니다.

🏹 활과 화살의 비유: 하나님의 공의는 활을 힘껏 당겨, 그 화살이 이미 죄인의 심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오직 진노를 막고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만이, 그 화살이 "여러분의 피에 취하는 것"을 막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개인적인 심판의 위협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3. 절망의 끝에서 열리는 문
이 설교가 단순히 공포와 저주로만 끝났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닌 악담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진정한 목적은 절망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중을 완전한 절망의 끝으로 몰고 간 뒤, 바로 그곳에서 유일한 탈출구를 제시합니다.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에드워즈의 어조는 긴급한 초청으로 바뀝니다. 그는 **"자비의 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진노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이들이여, 지금 깨어나 다가올 진노로부터 도피하십시오!"

이 설교가 실제로 선포되었을 때, 청중은 설교자에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와 비참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속에서 통곡하며 자비를 구했다고 전해집니다. 공포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달려가게 만드는 필수적인 동기였습니다.

결론: 공포의 설교가, 혹은 영혼의 의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은 에드워즈의 명성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웠습니다. 이 설교는 그를 냉혹한 지옥불 설교가라는 캐리커처로 만들었지만, 그의 전체 신학 안에서 이해할 때 그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설교는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영혼을 깨우기 위해 사용된 **'영적 의사의 수술용 메스'**와도 같습니다. 에드워즈는 죄라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환자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때로는 환자의 안일함을 깨뜨리는 고통스러운 수술(자아의 완전한 파산)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설교는 결코 신자들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죄인들을 향한 긴급 경보였습니다. 에드워지에게 공포는 결코 설교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이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자비로우신 구세주의 활짝 열린 두 팔 안으로 필사적으로 도피하도록 만들기 위한 거룩한 전주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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