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基礎宣教訓練オンライン講義リスト

이용도 (Lee Yong-do), 『이용도 목사 전집』

이용도 (Lee Yong-do)의 『이용도 목사 전집』
- 부제: 눈물의 선지자, 뜨거운 가슴의 목회자 -

서론: 눈물의 선지자, 뜨거운 가슴의 목회자
💧 만약 한 편의 설교가 유창한 논리가 아니라 뜨거운 눈물의 폭포수라면? 만약 기독교 신앙이 올바른 교리의 목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적이고 모든 것을 소진하는 '사랑의 열병'이라면?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 32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한 젊은 목회자는, 바로 그 불같은 심장과 마르지 않는 눈물로 한국 교회의 영적 부흥을 이끌었고, 동시에 교회를 분열시킨 거대한 폭풍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용도입니다.

『이용도 목사 전집』은 그가 직접 저술한 단행본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수집된 그의 설교, 일기, 편지, 그리고 시들을 모은 것입니다. 특히 그의 일기는, 한 영혼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에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시대의 아픔과 교회의 냉담함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를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영혼의 기록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이 '눈물의 선지자'의 뜨거운 영혼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의 신앙의 핵심이었던 그리스도와의 열정적인 신비적 사랑을 살펴보고, 그 사랑이 어떻게 민족의 고난을 끌어안는 '눈물의 기도'와 '십자가의 영성'으로 나타났는지를 탐구할 것입니다. 또한, 그가 왜 당시의 주류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예수에게 미친" 한 영혼의 노래
1. 신학의 심장: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사랑
이용도 목사의 모든 사상과 목회의 중심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교리를 넘어선 관계: 그에게 기독교는 믿어야 할 교리 체계 이전에, 사랑해야 할 '대상'이신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였습니다. 그의 일기는 예수님을 향한, 때로는 연인을 향한 것처럼 보이는 지극히 친밀하고 애정 어린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체험적 신앙: 그는 머리로만 아는 신앙을 경멸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를 직접 체험하고, 그분의 고난에 신비적으로 동참하며, 그분과 하나가 되는 황홀경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신비주의적이고 정서적인 신앙은, 당시 선교사들이 전수한 교리 중심적이고 이성적인 신앙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2. 목회의 표현: 고난과 눈물의 영성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뜨거운 사랑은 두 가지 독특한 영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 중심의 고난 영성: 이용도는 '십자가의 도'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려면 반드시 그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설교 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비통하게 울부짖었고, 청중 또한 그와 함께 울며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민족의 고난과의 동일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단지 2천 년 전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제의 압제 아래 신음하는 조선 민족의 고통 속에서,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에게 십자가는 민족의 현실이었고,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그의 별명처럼, '눈물'은 그의 목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습니다. 그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깊은 애통, 교회의 영적 죽음에 대한 비탄, 민족의 고난에 대한 중보,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응축된 강력한 기도의 언어였습니다. 그의 눈물 설교는 수많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3. 교회를 향한 비판과 갈등
이처럼 뜨거운 영성을 가진 이용도의 눈에, 당시의 제도권 교회는 차가운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죽은 정통'에 대한 비판: 그는 당시 주류 교회들이 살아있는 생명력은 없이, 올바른 교리와 형식만을 붙들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묘지'와도 같다고 외쳤습니다.

논쟁과 이단 정죄: 그의 신비주의적이고 체험 중심적인 신앙, 그리고 교회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은 결국 기존 교단과의 극심한 갈등을 낳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성경의 객관적 권위보다 주관적인 체험을 더 중시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집회가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1933년, 자신이 속했던 감리교와 장로교 총회 양측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고 면직당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결론: 한국 교회의 심장에 남은 불꽃
이용도는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양날의 칼과 같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비판적 유산: 그의 삶은 주관적인 신비 체험이 교회의 질서와 성경의 객관적 진리를 넘어설 때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

긍정적 유산: 그러나 동시에,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교회를 향해 신앙의 본질, 즉 그리스도를 향한 첫사랑의 회복을 외쳤던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서구 선교사들의 신앙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한(恨)'과 '정(情)'이라는 한국인의 깊은 정서와 민족의 고난 속에서 터져 나온 토착적인 영성의 강력한 표현이었습니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그의 영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열정적이고, 기도 중심적이며, 체험적인 신앙 스타일은 이후 한국의 부흥 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중요한 영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용도는 오늘날 한국 교회에 여전히 불편한 거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차가운 지식의 체계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눈물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첫사랑의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를 성자로 보든 이단으로 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용도가 오직 하나의 불타는 열정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고난받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미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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