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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 (Augustine of Hippo), 『고백록 (Confessions)』

어거스틴의 『고백록 (Confessions)』
- 부제: 한 영혼의 드라마이자 서구 정신의 원형(原型) -
서론: 왜 1600년 전의 '고백'이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가?
서구 문명의 역사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기독교 고전의 목록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페트라르카부터 루소,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 심리학이 탐구하는 '내면 자아'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고백록』은 인류가 써낸 가장 위대한 '영혼의 자서전'이자, 서구 정신사의 거대한 분수령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이 책을 펼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지닌 역사적 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고백록』은 16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적 고민과 갈망에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첫 문장, "주님, 당신은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불안합니다(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라는 절규는, 오늘날 풍요 속의 공허, 연결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의 영혼을 그대로 관통하는 진단입니다.
『고백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 책의 유일한 청중은 '하나님'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삶을 독자에게 과시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죄와 방황, 지적 편력과 정욕의 사슬—를 오직 하나님 앞에 남김없이 펼쳐 보이며, 그 모든 비참 속에서 자신을 건져 올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인 '고백(Confessiones)'은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첫째로 '죄의 고백(confessio peccati)'이며, 둘째로 '신앙의 고백'이자 '찬미의 고백(confessio laudis)'입니다.
본 강독에서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세 겹의 여정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첫째, 책의 전반부(1~9권)를 중심으로 한 인간이 신에게 돌아오기까지의 극적인 '서사적 여정'을 따라갈 것입니다. 둘째, 책의 후반부(10~13권)에 나타난 기억, 시간, 창조에 대한 깊은 '철학적 여정'을 분석하며 그가 도달한 지성의 세계를 엿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두 여정을 종합하여 『고백록』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 영혼의 보편적인 순례길을 제시하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를 고찰하며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한 위대한 성인의 삶을 넘어, 우리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진리의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론 1: 서사적 여정 - "나의 하나님, 나의 비참을 향한 당신의 자비" (1~9권)
『고백록』의 전반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흡인력 있는 회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유아기부터 시작하여 33세에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회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 보입니다. 이 여정은 '쉼 없는 마음(restless heart)'이 어떻게 안식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입니다.
1. 죄의 심연: 배 도둑질의 심리학
어거스틴의 죄에 대한 분석은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심리학적입니다. 그는 단순히 죄의 목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를 짓는 인간의 내면 동기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권에 등장하는 유명한 '배 도둑질' 이야기입니다. 16세의 어거스틴은 친구들과 함께 이웃집 과수원에서 배를 훔쳐 돼지에게 던져줍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도 아니었고, 더 맛있는 배가 없어서도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배를 훔친 유일한 이유는 "악 그 자체를 사랑했고, 금지된 것을 행하는 쾌감"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청소년기의 비행에 대한 회상이 아닙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죄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죄란 어떤 선(善)을 얻기 위한 잘못된 수단이 아니라, 종종 악(惡) 그 자체가 목적인 도착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 질서에 반항하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교만의 표현입니다. 그는 이 작은 사건을 통해 인간 실존의 깊은 파멸과 비참을 발견하며, 이러한 죄의 심연에서 자신을 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암시합니다.
2. 지성의 방황: 마니교에서 신플라톤주의까지
청년 어거스틴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향한 불타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갈망은 그를 오랫동안 엉뚱한 길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그는 9년 동안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마니교는 세상이 선한 빛의 신과 악한 어둠의 신의 투쟁터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는데, 이는 세상에 만연한 '악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죄의 책임을 내 안의 악한 본성 탓으로 돌릴 수 있게 해주었기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니교의 조잡한 우주론과 물질적인 신관은 그의 지성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회의주의를 거쳐 그가 만난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이었습니다. 신플라톤주의는 어거스틴의 회심에 결정적인 지적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첫째, 신플라톤주의는 신이 물질이 아닌 순수한 영적 실체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둘째, 악이 어둠의 신과 같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privatio boni) 혹은 부재 상태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제 지성의 장벽은 허물어졌지만, 그에게는 더 깊은 '의지의 감옥'이 남아있었습니다.
3. 의지의 감옥과 은혜의 해방: "들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머리로는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였지만, 몸은 여전히 옛 습관, 특히 성적 욕망의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는 8권에서 자신의 분열된 의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새로운 의지와 묵은 의지, 이 두 의지가 내 안에서 싸웠고, 그 싸움이 나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또 다른 의지에 발목이 잡힌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며 통곡합니다.
이 절망의 정점에서 회심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울고 있던 그에게 어디선가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Tolle, lege)!"라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를 신의 음성으로 받아들인 그는 곁에 있던 성경을 펼쳐 듭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은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습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확신의 빛이 마음에 쏟아져 들어왔고, 의심의 어둠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깨달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분열된 의지를 하나로 묶고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의지를 사로잡은 사건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 제게 순결을 주십시오. 하지만 아직은 말고요."라고 기도했던 그의 의지가 마침내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한 것입니다.
이 서사적 여정 전체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가 배경처럼 흐릅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결코 홀로 이룬 성취가 아니라, 신실한 신앙 공동체와 한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합작품이었음을 『고백록』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론 2: 철학적 여정 - 내면세계의 탐험 (10~13권)
많은 독자들이 9권에서 어거스틴의 회심과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책을 덮지만, 사실 『고백록』의 진정한 지적 깊이는 후반부, 특히 10권과 11권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의 나'를 분석하며 기억과 시간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을 탐구합니다.
1. 기억의 궁전과 내면의 스승 (10권)
10권에서 어거스틴은 자기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하며 놀라운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만약 제가 당신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저는 당신을 찾으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질문은 그를 '기억'이라는 광활한 내면세계로 이끕니다.
그는 기억을 "넓고 무한한 궁전"에 비유합니다. 그 안에는 내가 감각했던 모든 것들(색, 소리, 냄새), 내가 배웠던 학문과 기술, 내가 느꼈던 감정들,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기억의 광대함에 경탄하며 외칩니다. "위대하다, 기억의 힘이여! 그것은 나의 정신 자체이며, 나 자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억의 궁전 안에 저장된 하나의 항목이 아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진리를 판단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능력 자체가 기억 안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의 빛이야말로 우리 내면에서 가르치시는 하나님, 즉 '내면의 스승(Magister intimus)'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는 여정은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기억의 궁전 너머에 있는 진리의 빛 자체로 향하는 여정임을 그는 깨닫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은 저의 가장 깊은 곳에 계셨으나, 저는 제 자신으로부터도 밖에 있었습니다."
2. 시간의 신비와 영원한 현재 (11권)
11권에서 어거스틴은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을 묵상하며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질문 중 하나를 던집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Quid est ergo tempus?)"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역설적인 대답을 내놓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을 때는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시간이 천체의 움직임과 같은 객관적인 실체라는 통념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본질을 인간의 '정신' 혹은 '영혼' 안에서 찾습니다. 그에 따르면,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고 순식간에 과거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측정하고 경험하는가?
어거스틴의 답은 시간의 세 차원—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정신 안의 현재'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는 '기억'으로서 현재에 있고, 현재는 '주시(attention)'로서 현재에 있으며, 미래는 '기대'로서 현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은 객관적으로 흐르는 강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길게 늘어나는 '정신의 확장(distentio animi)'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분절되고 확장된 시간 경험은, 모든 시간을 하나의 '영원한 현재(nunc stans)' 속에서 온전히 파악하시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 통찰을 통해 어거스틴은 우리가 시간의 파편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가는 유한한 피조물이며, 오직 영원하신 창조주 안에서만 참된 안식과 통합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결론: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현대인을 위한 『고백록』의 유산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한 개인의 서사적, 철학적 여정을 넘어, 모든 인간 영혼의 보편적인 드라마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진리를 갈망하지만 허상에 빠지고, 선을 원하지만 악의 사슬에 묶여 절망하며, 마침내 자신의 힘이 아닌 외부에서 오는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닫는 과정은 모든 시대, 모든 인간의 실존적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고백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유산은 '내면성(interiority)'의 발견입니다. 이 책 이전까지 고대인들에게 '자아'는 주로 사회적 역할이나 외부적 성취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인류 최초로 자기 내면의 복잡성, 갈등, 기억, 심리를 깊이 탐색하며, 진정한 자아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이 내면세계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밖으로만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돌리라고, "네 자신 안으로 돌아가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거한다"고 외칩니다.
또한 『고백록』은 신앙이 결코 맹목적인 도약이 아니라, 치열한 이성적 탐구와 실존적 고뇌를 통과하는 여정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지성과 감성, 철학과 신학, 죄의 고백과 은혜의 찬미를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내며,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앙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10권에 나오는 그의 아름다운 기도는 『고백록』 전체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래되고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은 제 안에 계셨으나 저는 밖에 있었고 거기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 당신은 저와 함께 계셨으나 저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 당신이 소리치고 부르셔서 저의 귀먹음을 부수셨고, 당신이 번쩍이고 빛나셔서 저의 눈멂을 몰아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어거스틴처럼 세상의 헛된 아름다움에 취해, 정작 우리 안에 계시는 참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백록』은 1600년의 세월을 건너와 바로 그 귀먹고 눈먼 우리를 향해 외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과도 같습니다. 이 위대한 영혼의 고백을 길잡이 삼아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영원한 진리요 아름다움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