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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목회자가 이중직 한다고?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이중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딜레마가 나의 목회 선교 이중직 사명이었나? 소명이었나? 이었다.

7. 목회자가 이중직 한다고?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이중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딜레마가 나의 목회 선교 이중직 사명이었나? 소명이었나? 이었다. 내가 이중직을 수행할 때 나 자신의 문제에 직면할 것인데 거기에 대하여 답변할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목사로서 이중직, 선교사로서 이중직 과연 사명인가 소명인가. 이중직이 사실 순탄한 과정이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중직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중직을 수행하려고 할 때 가장 고민이 이것이었다. 이중직 일이 사명인가? 하나님! 내가 이중직을 하여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는 이런 고통이 있었다. 하나님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내가 왜 목회하면서 또 하나의 일을 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께 나 자신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자립하고도 아 통 크게 목회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얍복강 강가의 야곱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과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중직에 대한 부담감, 두려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고통의 문제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고통이다. 가족에게, 성도들에게, 동료들에게 과연 쉽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얼마나 될까? 나 자신도 과부하 상태이었다. 한마디로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았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지 몰랐다.
이중직에 대한 사명과 소명이라는 것에 직면하여 이 아픔과 고통을 체험하지 못한 목사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고통이 얼마나 쓰라린 고통인지. 아마도 예수님이 짚어지고 가신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는지, 이런 고통이었다. 이중직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겪었든 고통이다. 이런 고통이 있는데 같은 소속의 동료와 목사가 말로 죽이는 고통이 있다.
목사가 이중직을 해!
돈밖에 모르는구먼!
은혜가 떨어졌구먼!
세상이 변했네!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래서 천국에 갈 수 있겠어!
이런 질타 속에서 현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고민의 연속이다. 그저 주여! 주여! 만 부를 뿐이다. 지금까지 함께한 성도은 어떻게 되는가? 지금까지 나를 격려해 준 사모의 입장은? 이중직에 앞서 나에게 있어 성도가 우선인가? 가족이 우선인가?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이때 다시 자신을 향한 질문이 다가온다. 나는 열정을 다하여 목회를 했는가? 이와 같이 이중직을 수행하는데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으며, 한 겨울 살을 파고드는 추위가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이중직을 수행하는 수많은 목사가 이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 누가 이중직을 수행하는 목사들에게 돈을 든질 수 있을까?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중직도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함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