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宣教訓練?
今は宣教団体でなくても誰でも受けることができる。
12個の大テーマと470個の科目の核心内容
講義と講義に関する追加の質問、チャットChatGPTで
今はAI時代
AI時代に合った最適な宣教訓練をいつでもどこでも誰でも
宣教支援者の募集に苦労する宣教団体の利用可能
これから世界宣教は
平信徒宣教師が主導する。
BAM ミッショントレーニングオンラインレッスンリスト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비즈니스(2)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직업이 존재하고 있으며 없어지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 생겨나는 직업도 있고 AI가 대체하는 직업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직업(2)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직업이 존재하고 있으며 없어지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 생겨나는 직업도 있고 AI가 대체하는 직업 수없이 생겨나고 있다. 비즈니스는 수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비즈니스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직업의 하나이지만 비즈니스를 직업이라고 말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유는 우리의 인생사 모두가 비즈니스라고 하여도 시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비즈니스라는 개념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리바마 창업자인 마원 회장은 세상에 어려운 비즈니스 없다. 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의미 있을까? 아마도 마원 회장이 말한 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마원 회장이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 본다.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작은 비즈니스를 이야기를 하면 돈을 별로 번다고 이야기를 하고, 큰 비즈니스를 이야기를 하면 돈이 없다고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자고 하면 경험이 없다고 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라고 하면 어렵다고 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하면 다단계라고 하고, 상점을 같이 운영하자고 하면 자유가 없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고 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 보기를 좋아하고, 희망 없는 친구들에게 의견 듣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들은 대학교 교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지 만시 각장 애인보다 더 작은 일을 한다. 그들에게 물어봐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은 대답할 수 없다. 내 결론은 이렇다. 당신의 심장이 빨리 뛰는 대신 행동을 더 빨리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대신 무언가 그냥 해라. 가난한 사람들은 공통점으로 한 행동 때문에 실패를 한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다가 끝이 난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에게 물어봐라. 당신은 가난한 사람인가? 이것을 왜 이야기를 했겠는가? 나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가? 이런 질문을 주어졌을 때 수많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그렇게 살았던 것에 대해서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유 없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왜냐면 그들은 그렇게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한테 위로 받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유와 궤변은 항상 논리적이고, 항상 완벽하다. 인생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 도전 속에서 나의 삶이 무엇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가는 것이 고난의 삶을 수정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 노력이 힘들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어차피 그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나의 인생에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어 줄 것이고, 너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마원 회장의 글에서 나는 진정한 비즈니스 삶의 모델을 보았다. 나는 그 모델을 선교에 적응하고 싶었고 남들이 하는 비즈니스 선교가 아닌 진정으로 비즈니스와 선교가 동행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도전했고 도전해서 만들었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숫자만큼의 비즈니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다시 말하면 비즈니스는 곧 삶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를 넘는 것, 또 하나의 삶의 현장이라고 할까?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어디 하나 닮은 사람이 없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일란성 쌍둥이 일지라도 다른 것처럼 비즈니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콜라의 경우 대표적인 회사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이다. 콜라는 같지만, 맛부터 다르다. 분명히 미묘한 차이가 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라는 책을 보면 패망한 기업들의 이유는 1%의 영감은 있었으나 99%의 노력, 즉 혁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증기 기관이 출현해 말(馬)을 대체한 것은 기술의 진보이다. 이 기술의 진보를 이용해 철도 사업으로 역마차 사업을 밀어낸 것이 혁신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려면 혁신이 필수라고 말한다. 그렇다. 비즈니스를 선교에 활용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는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비즈니스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고 혁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세상이 변하다 보니 선교도 변해야 한다.
아마도 이와 같은 기업의 변화는 소비자의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좋은 상품, 적절한 가격, 충실한 사후 관리 정도면 만족했든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덕분에 돈 벌었으니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실제로 같은 가격의 유사한 상품이라면 당신이라도 사회를 위해 뭔가 하는 기업체 상품을 사주지 않겠는가?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은 여러 기업이 자신의 수익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라는 말이 조금 거창한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이런 기업 덕분에 여러 사람이 조금이나마 따스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별것 아닌 것 같은 간단한 기계, 학용품, 신발, 전자 제품들이 이런 기업을 통해 자원이 부족한 나라로 분배되고, 그들은 이런 활동에 힘입어 세상 시민으로 자라고 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사회를 도와주는 방법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사회봉사 활동은 CEO 혼자 하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물론 수익의 일정 부분을 줄 수는 있겠지만 좀 더 분명한 결과를 만들어 내려면 조직원들이 참여가 필요하다. 또 이런 참여만이 사회봉사를 외부 봉사 차원에서 내부의 혁신과 인간 중심의 상품 개발로 이어갈 수 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지원 활동을 하려면 기업이 가진 강점과 자원을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저 돈만 주면 된다는 식의 지원 활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건설업체가 자신들이 가진 건설 노하우를 통해 무주택자 집을 만들어 주고, 비료 만드는 기업이 좋은 비료를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 공급하고, 병원이 오지에 의사를 보내 환자를 도와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남을 돕겠다면 실제 도움이 될 방법으로 도와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세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비즈니스를 통해서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보았고 만들었다. 그래서 더 비즈니스가 절절하다. 이처럼 비즈니스를 선교와 동행이라는 단어로 만들어 보니까 더 애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비즈니스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당신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2. 비즈니스와 선교 소통 가능한가?
단어적으로 보면 비즈니스(Business)와 선교(Mission)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전혀 상반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선교는 주는 처지이고 비즈니스는 경쟁하는 상황 속에서 뭔가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아야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다는 것인데, 작금의 미국의 대통령이 시행하고 있는 국가 우선주의는 바로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든 위대한 비즈니스맨이니까 가능할지 모른다. 비즈니스는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유인즉 이제는 국가의 비즈니스의 경쟁력이 바로 국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모르는 국가의 지도력은 한계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 비즈니스와 소통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즈니스를 모르는 국가의 지도자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비즈니스를 모르는 국가의 지도자는 자격도 없다는 사실이다. 비즈니스와 소통의 관계는 이제 국가의 거대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는 어떤가? 선교도 바로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소통이 없는 선교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는 과거에 수많은 나라에서 영토 점령을 통해 소통이 없이 이루어진 선교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점령하고 노예로 부리고 혹독한 마음의 상처를 남겨 놓은 선교가 잘못된 유산일지도 모른다.
소통이 없는 선교는 하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하고 소통을 원하시고 소통의 이유로 이 땅에 자기의 아들을 주신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소통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선교의 근간을 소통에서 찾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다르거나 인종이 다르거나 언어가 다르거나 상관이 없다. 소통이 없는 선교는 바로 지난 시대에 이루어진 현장에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면 비즈니스와 선교는 어딘가 모르게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즈니스와 선교가 소통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볼 때 21세기형 소통의 시대에서 비즈니스와 선교가 시대적 소명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