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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중직 누구의 책임?

서울 택시 기사 16만 명 시대, 부산 택시 기사 8만 명, 전국에서 택시운전 하는 목회자 만 명 이상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 택시뿐이겠는가?

14. 이중직 누구의 책임?

서울 택시 기사 16만 명 시대, 부산 택시 기사 8만 명, 전국에서 택시운전 하는 목회자 만 명 이상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 택시뿐이겠는가? 수많은 택배 회사의 물류 창고에 가면 목사들이 넘쳐 난다. 다단계 회사에 양복 입고 자리에 앉아 능수능란하게 사업의 설명을 하는 사람 대부분 목사다. 지하철 택배 하는 목사들이 많다. 이러한 경우는 주로 도시형 이중직을 하는 목사들이다. 현직 목사도 많지만 은퇴한 목사들도 이러한 현장에 넘쳐난다.

종로 5가의 모 다단계 단체에서는 주로 은퇴 목회자를 기업의 세력 확장 도구로 활용한다, 이유는 네트워크가 강하고 인적 역량이 강하다는 이유이다. 여기의 다단계 현장은 코로나 이전도 이후도 상관없다. 주간 단위로 모임이 있는데 어떤 날은 센터에서 마치면 종로 5가 지하철역까지 다단계 회사의 봉투의 물결이 넘쳐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목사의 이중직은 교단과 노회의 문제도 있다. 교단과 노회가 모든 목회자의 생업과 삶을 책임질 수 없다. 여기서 책임 소지를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의 현장은 은혜의 공간하고는 다르다. 주어진 시간과 일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적인 방법이 존재하는 곳이다. 목사로 부름을 받고 세상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목사가 노동의 현장에서 일할 때 시행착오가 너무도 많이 발생한다. 그로 인하여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반목과 다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일할 때 목사의 신분이 노출도기도 하고 대접만 받아 오든 습관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서로의 거부감이 발생하고 다른 사람이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목사로서 목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회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를 사직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의 지론에 대하여 왈가불가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 하나 이중직을 양산하는 이유는 구시대적 교회 개척이 만든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척교회 남발의 현상이다. 물론 교회가 많아야 영혼구원의 숫자도 늘어 날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지금의 개척교회는 10년 전의 개척 교회 상황과 아주 다르다. 솔직히 10년 전만 해도 교회 간판만 달면 사람들이 모이는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대형 교회가 있으면 암묵적으로 개척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뜻? 이렇게 생각하는 목사도 있다. 목회를 하다가 생각대로 되지 못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목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목사로서 면책이 된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목회를 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목사가 어디 한두 명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길거리에 넘쳐 나는 것이 목사라고! 노회에서 수많은 목사에게 안수를 남발하는 것도 이중직 목사를 양성하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물론 목사가 되어 충성을 다하며 한 명의 성도가도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목사도 있다. 시골의 노인들과 함께 삶을 함께하는 존경하는 친구 목사가 있어 늘 행복함을 느낀다.

목사가 이중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중직에 대한 책임감이다. 수많은 이중직하는 목사를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불쌍함, 가련함, 안타까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차라리 이중직을 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하게 하는 목사들을 많이 만났다.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한다.” 이런 목사가 이중직을 수행하면 어떻게 될까? 책임감 없는 목사는 이중직을 수행하면 안 된다.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할 수 있다. 이중직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초심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중직 하는 목사들을 만나 보면 초심을 잃은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목회를 안 하고 주어진 환경에 몰입되다 보니 초심을 상실한 것이다. 누군들 이러고 싶겠는가? 모두는 아니지만, 초심을 잃어버린 이중직을 수행하는 목사들, 참으로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잃어버린 영성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세상 사람과 다름이 없음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초심을 잃어버린 이중직 목사들 과연 그들이 언제 초심을 회복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중직 목회자가 본분을 망각하지 않을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중직을 수행해도 목사이다. 목사를 사직하지 않은 이상 노동의 현장 속에 있어도 목사이다. 나는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면서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너무 힘들어 교단과 노회에 목사를 사임하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내와 주변의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제출했고 사직서를 받아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사직을 받아 주지 않았다.

이중직 목회자는 자신이 어떠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목사라는 신분을 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이유는 그래야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불신자들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노동의 현장에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사가 현장에 있는 것을 보면 상대의 신분을 밝히든 밝히지 않아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당신의 책임감이 크리스천에게 도전을 주든지 아니면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중직 목회자는 일반 목회지보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일하는 자체가 모범을 보여줄 수 있다.

성도들에게 당당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성도들이 하는 일을 더 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된다. 더불어 가정에 충실하여야 한다. 일을 한다고 해서 목사의 자세와 책임이 흐트러진다면 가족에게도 존경받을 수 없다. 이중직하는 목사의 책임감은 목회만 하는 목사의 책임감보다 더 무거운 이유이다. 이중직하는 목사는 양 날개의 무게가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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